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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


전시장 입구 현수막


전시장 정면 전경


전시장 츨입구 정면 벽에 부착된 작가 사진과 평론


오프닝 리셉션 풍경, 작가의 사위와 손녀


오프닝 리셉션 풍경


전시장 풍경


이신향ㆍ강명희ㆍ구혜선ㆍ이동섭 님과 함께


성민섭ㆍ나재오ㆍ민경우 님과 함께


정동수ㆍ이동섭ㆍ김호동 님과 함께


박장희 님과 함께


백금남 님과 함께


김윤일 님과 함께


서기흔 님과 함께


서기흔 님 내외


윤철원 님과 함께


작가의 아들과 딸


도곡동 기쁜소식교회 교우님들과 함께


작가의 아내


전시회 기념 티셔츠와 에코백 판매 코너


전시장 입구 정면의 윈도우 데컬


한쪽 눈을 가린 작가 - 안상수 님의 연출


오프닝 리셉션을 준비하는 RSVP 서정임 님


문영경ㆍ심경주 님


안경오 님


기념촬영을 즐기는 처녀들


이경진ㆍ권영선 님


이서우 님과 함께


어떤 단체관람객들의 기념촬영


문충현 님 가족

황부용 힐링 그래피즘의 생명성에 대하여
- 변증법적 결합에 의한 생명성의 형상화

허기영(휴매니메드)/ 블로거


.....녹색이라는 색채에서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대상들은 다음과 같다 ― 나무ㆍ풀ㆍ싹ㆍ채소.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엽록소로 가득 찬 대상이라는 과학적 묘사가 적합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좀 더 순화한다면 '생명 활동'이라는 말로 쓸 수 있을 것 이다. 그렇다면 생명 활동이란 무엇인가? 생명 활동이란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살아 숨 쉰다는 것은 동적 대상인 동물뿐만 아니라 정적인 대상인 식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숨 쉰다는 것은 끊임없는 운동의 과정이며, 존재의 상태이다.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 ― 힐링 그래피즘이라는 용어는 황부용 작가 스스로 선택한 단어이다. ― 은 그러한 '생명성'의 문제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가 사용한 색채와 대상, 모두 생명성을 관습적으로 나타내는 것들이다. 색채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 역시 수채화가 주를 이루어 물이라는 또 다른 생명성의 대유 대상을 이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피상적 차원에서의 인식만으로도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생명성'이라는 것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비평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황부용이 생명성이라는 관념을 구상화하고 있는 방식이다. 나는 그 방식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빌려서 질료와 형상의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질료적 측면

.....황부용의 작품의 질료적 특성을 분석해 보자. 먼저 황부용의 작품은 종이에 흡수된 수채화 물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채화 물감이라는 질료는 번짐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번짐이란 곧 우연성을 의미한다. 한 방울의 물감을 종이 위에 떨어뜨리는 순간 물감은 종이의 면을 타고 자유로운 운동을 하게 된다. 화가는 그 운동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는 있지만 ― 붓질을 그림의 오른쪽 위에 하였는데 번짐의 대상이 왼쪽 아래에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고, 실체로 드러나는 물감들의 구현은 우연이라는 것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이는 마치 잭슨 폴록의 작품의 특성과 유사하다. 잭슨 폴록의 작품은 우연에 근거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잭슨 폴록이라는 화가의 의도에 의해서 구현된 우연이다. 나는 이것을 '의도가 개입된 우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의도가 개입된 우연은 ① 필요에 의해서 생성될 수 있고 ② 의도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으나 ③ 그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의도가 개입된 우연에서 우연은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자연법칙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측하기에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필요로 하며, 너무나도 복잡한 대상들의 상호 작용을 해석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결과값은 단일한 것으로 존재하게 된다. 관찰자는 번짐이 일어난 대상을 쉽게 지각할 수 있으며, 그 대상은 한 가지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예측될 수는 없으나 존재하는 것이 바로 번짐에 의해 구현된 수채화 물감의 특성이다. 무수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는 반드시 선택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지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순간 인간은 불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무수한 상호작용들의 결과물들을 전혀 분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좌절감에 의해서 크게 지배받지 않는다. 우리가 물감이 어떻게 번져 가는 지에 대하여 알 수 없다고 하여도, 그것이 번짐의 결과물을 본다는 사실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이성이 무수한 자연법칙에 의해서 실체화된 결과물을 아무런 문제없이 '물감이 아름답게 번져 있다'는 방식으로 이해함으로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 상태이다. 물감이 어떻게 번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으나, 그 무지의 상태가 미적 감상에 위해를 끼치지 않으며, 인간은 그것을 인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쾌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칸트를 빌리자면 숭고한 대상에서 얻어지는 미적 쾌감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의도가 개입된 번짐'의 효과에서 '의도'에도 주목한다. 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작가 황부용이 물감의 번짐의 정도를 어느 정도 조절하였다고도 인식할 수 있다. 잭슨 폴록의 작품과 황부용의 작품의 번짐 효과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 의도의 차이에서 온다.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각종 우연의 효과 ― 이를테면 그의 대표작인 '가을의 리듬'을 살펴본다면 ― 는 우연의 효과 자체를 작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연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황부용의 작품에서 번짐의 효과만으로 작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번짐은 나뭇잎에서 생명성을 보다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우연의 효과는 나뭇잎이라는 형태 내에서 유효하다. 만일 초록색 수채화 물감 한 방울을 종이 위에 찍어서 번짐의 효과를 얻는다고 할 때, 이 번짐은 생명성이라는 의도에 봉사하지 못한 채, 전혀 다른 성질을 갖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황부용의 작품들에서 사용된 수채화의 특성인 번짐의 효과는 생명성이라는 의도에 봉사하는 우연이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이 생명성이라는 의도는 다음에서 논의할 형상의 측면에서 구체화될 것이다.

.....형상을 논의하기에 앞서서 그의 작품의 또 다른 중요한 질료적 측면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녹색이라는 색만 사용하였다. 이 역시 그의 작품의 중요한 질료적 측면이다. 녹색이라는 색채는 앞에서 논의한 수채화 물감이라는 질료적 특성과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수채화 물감에서의 녹색과 유화 물감에서의 녹색은 색채가 유사하거나 극단적으로 같다고 하더라도 결코 같은 존재는 아니다. 물감은 색채와 질감이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조직된 대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녹색 수채화 물감이라는 것은 녹색 유화 물감이나, 노란색 수채화 물감과 구별되는 특성을 지닌 존재이다.

.....녹색에 대해서 좀 더 구체화볼 필요가 있다. 황부용의 녹색은 대체로 연두색이라고 인식되는 ― 황부용은 이 색들을 디자이너의 색채용어를 사용하여 '라이트 그린ㆍ라임 그린ㆍ메이 그린'이라고 언급하였다 ― 색채의 인간적 스펙트럼 내에 위치한다. 이것은 자연이라는 관념화된 대상을 우리가 인식할 때 떠올리는 여러 가지 형상들 ― 새순ㆍ나뭇잎 ― 에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색들이다.

.....이 색들은 보편적이면서도 어느 정도는 지역적이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녹색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인간은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식물의 엽록소가 반사하는 빛의 파장이 인간의 감각 기관에 야기하는 색을 떠올리게 된다. 굳이 여기에 진화론적인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접하게 되는 식물은 지역에 따라서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북유럽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인식하게 되는 식물들은 주로 침엽수가 될 것이고, 따뜻한 온대 지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는 식물들은 그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녹색이라는 색채와 식물을 강하게 병치시켜 생각하지만, 그들이 인식하는 식물은 인식하는 사람이 익숙하게 접한 특정한 식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황부용이 제시한 녹색이라는 것은 지역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익숙함'이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익숙하다는 것은 곧 환경적 요인에 관한 특성이다. 익숙한 대상들은 시간적으로 자주 인식될 수 있어야 하며, 공간적으로도 곳곳에 널리 퍼져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시간적ㆍ공간적 편재(遍在)는 곧 문화라는 요인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 익숙함이라는 상태가 지닌 편재성(遍在性)을 황부용의 녹색에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자. 황부용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녹색들은 익숙한 색이다. 작가 황부용이 언급한 것에 따르면 이것은 플라타너스의 색이 될 수도 있고, 포도나무의 잎사귀 색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작가 황부용의 시선에서 익숙한 대상들이며, 이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적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황부용의 그림은 한국의 지역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적 특성은 이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부여하게 되고, 이는 다음에서 논의할 형상적 특성과 결합하여 생명성이 더 강화되게 된다.

형상적 측면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 작품의 질료적 측면은 형상적 측면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리고 그 관계가 생명성의 형상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먼저 힐링 그래피즘에서 나타나고 있는 각종 형상들을 분석해 보고, 그 특성들과 질료적 측면에서의 연관성에 대해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황부용의 작품의 형상적 특성을 보기 위하여 구체적인 작품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질료적 측면의 특성들이 황부용의 그림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들이라고 한다면, 형상적인 특성은 작품군(作品群) 들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서 분류함으로써 확인될 수 있다.

.....먼저 황부용의 작품군들 중 '장정의 꿈'과 '벌새와 우산'을 살펴보자. 이 작품들에서는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익숙한 형태들이 등장하고, 제목에서도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형태가 모두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군 '장정의 꿈'은 두 가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벌새와 우산'도 그러하다. '장정의 꿈'을 구성하는 두 작품은 모두 식물의 잎과 사람이라는 형태를 분리해 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벌새와 우산' 역시 약간의 변주는 있지만 우산과 벌새를 분리해 낼 수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나는 '분리'라는 특성으로 언급할 것이다. '분리'의 특성에 속하는 작품군들은 ① 익숙한 대상들이 존재하고 ② 그 대상이 다른 대상과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특성의 작품군들은 구체적인 대상을 매우 간단하게 구별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함과 안정감을 준다. 작품군 '힘이 솟구치는 날들을 위하여' 역시 '분리'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뭇잎과 인간이라는 대상을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리'의 특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분리의 특성은 익숙함과 이질성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된다. 먼저 익숙함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쉽게 분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익숙함은 앞서 질료적 특성에서 언급한 녹색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익숙함과 결합되게 된다.

.....그리고 그 결합 방식은 이질성이라는 측면과 관계가 있게 된다. '분리'의 특성을 지닌 작품들은 자연물과 인간(인공물)이라는 대립되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벌새와 우산'에서는 자연물 벌새와 인공물 우산이 대립되며, '장정의 꿈'에서는 자연물 은행잎과 인간이 대립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앞에서 언급한 녹색이라는 '익숙함'의 질료적 특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그 특성에 의해서 생명성이라는 주제로 결합된다. 여기서 대립은 해소되며, 자연과 인간은 합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논의할 것은 '결합'의 특성을 지닌 작품군이다. 이 특성의 작품군들은 분리될 수 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결합의 특성은 '분리'의 특성의 반정립(안티테제)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결합의 특성을 지닌 것은 낯설음과 동질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황부용의 작품군들 중 '대망을 위하여'가 이에 해당한다. '대망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인공물과 자연물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에 낯섦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동질적이다. 이들은 분리의 특성을 지닌 것과 달리 본질적으로 합일된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발전된 차원의 자연과의 합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특성으로는 '분리'와 '결합'의 특성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형태가 있다. 이것은 황부용의 작품군들 중 '위를 보고 걷자'가 해당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분리와 결합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위를 보고 걷자'에서 자연물과 인간은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인간의 일부는 자연물에 양각되어 있고, 일부는 음각되어 있다. 이들은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결합되지 않은 상태이다. 인간의 다리는 나뭇잎의 모양으로 되어 있으나 다리는 나뭇잎으로 되어 있지 않은 인간의 상반신의 형태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다리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변증법의 실체적 구현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분리의 상태 자체가 곧 결합을 의미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상태는 독특한 제3의 상태를 만들게 되며, 이들은 다양한 비율로 변주된다. 나뭇잎이 다른 식물의 것으로 대체되기도 하며,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것은 곧 자연과 인간의 분리 그 자체로서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도출하게 되며, 이들의 관계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이 얻어진다.

.....이 명제에 앞에서 논의한 '의도가 개입된 우연'을 결합시킬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분리되었지만, 그 순간 합일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의도적이지만 우연적이므로 무수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생명성의 아름다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성이란 결과적으로 끊임없는 운동이다. 생명성은 안정성에서 우러나온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식물들에서 자연의 안정감과 푸근함을 느낀다. 이들은 우리와 분리되었기 때문에 익숙함의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생명성은 안정적이지 못한 관계에서도 나온다. 자연과 인간은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지만 신선하다. 그러나 불안정하다. 그리고 이 안정과 불안정, 익숙함과 낯설음, 이질성과 동질성, 분리와 결합은 변증법적으로 합일되어 독특한 제3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 순간 생명성의 아름다움이 구가된다.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은 결과적으로 변증법의 생명미학을 구현한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면서 논의는 종결된다.

.....[네이버블로그 2011년 6월 1일]


황부용: 힐링 그래피즘

김정곤(녹색의문)/ 블로거


.....이 전시가 눈길을 끌었던 것은 '힐링 그래피즘'이라는 생소한 용어에서 오는 호기심과 전시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독특함이었다. 그래서 전시 막바지에 이르러 잠시 시간을 내어 전시장을 찾게 되었다. 평일 낮 시간이라는 점과 전시 자체의 생소함 때문인지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조용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먼저 '그래피즘'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작가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피즘이란 한마디로 구상적인 상징 형태로 인간의 원초적인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피즘의 역사는 기원전 약 30,000년부터라고 한다. 그것은 발생 당시부터 사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었다.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에 대한 추상조형이었다. 실물의 묘사가 아닌 상징적인 변환으로서 문서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작가가 내린 정의를 읽어도 '그래피즘'이라는 용어가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진 '힐링'이라는 단어 '힐'은 '치유하다'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힐링 그래피즘'이라는 말은 치유하는 그래픽 또는 치유하는 그림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여기에 작가가 디자이너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징성을 갖고있는 기호화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황부용의 작품을 살펴보면 작업방식은 주로 캔버스에 연필과 수채물감 또는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표현했다. 작품에 사용된 색상은 오직 배경의 흰색과 대상의 녹색이 전부이다. 따라서 작품을 보면 대체로 비슷하며, 단조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품에는 나뭇잎과 인간 또는 나뭇잎과 사물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나뭇잎은 자연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들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뭇잎 또는 인간이 서로 분리되어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서로의 일부 또는 전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뭇잎은 인간이 되고, 인간은 나뭇잎이 되기도 한다.

.....나뭇잎의 일부분에 나타난 모양은 인간 또는 동물의 형상인데, 이것은 아무런 색과 무늬가 없는 텅 빈 공간이다. 물론 텅 빈 공간은 흰색의 배경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실루엣은 나뭇잎 밖으로까지 이어지는데, 바깥에는 흰색의 배경과 구분하기 위해 나뭇잎의 색과 무늬가 실루엣의 연장선에 있게 된다.

.....녹색의 단조로운 색상 패턴은 작품을 단순하고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물론 관람객은 복잡하고 화려한 색상의 그림보다 이처럼 단조롭고 직관적인 그림에 더욱 집중하고, 더 쉽게 기억할 수 있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은 기호와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작가의 철학 또는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것은 치유를 중심으로 한 자연과 인간의 관계이다. 이 때 자연과 인간은 서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거나 대립적이기 보다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나뭇잎의 무늬를 자세히 보면, 수많은 무늬들이 불규칙적이고 복잡한 듯 보이면서도 규칙적이고 단순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굵은 선에서 여러 개의 선들이 분화하고, 그 선에서 다시 작은 선들이 분화하는 것. 이것은 나무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나무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에서 작은 가지들이 분화하고 각각의 가지에서 다시 가지가 분화하는 것. 이 때 가지의 분화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한다. 이것은 전체와 부분이 유사성을 보이는 프랙탈을 연상시키는데, 자기 유사성에 의해 이러한 분화는 끊임없이 발생하며, 일정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비록 하찮은 나뭇잎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바로 자연의 이치가 담겨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자연과 분리되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한 것. 그래서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삶을 살 때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자연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자연을 모방한 이미지나 사물ㆍ환경에서도 그와 비슷한 심리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연의 녹색에서 사람은 시각적 편안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여기에서 작지만 서서히, 그리고 지속적인 치유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황부용의 작품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감상하면 될 것 같다.

.....[네이버블로그 2011년 3월 30일]


힐링 그래피즘 전에 부쳐

박옥생/ 미술평론가


.....움바르토 에코는 추상적인 대상을 가리키기 위해 약정적으로 사용하는 간단한 그림형태(점ㆍ선ㆍ직선ㆍ곡선)를 기호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 도시문명에서 빠질 수 없이 등장하는 이러한 지시기호들, 간략하게 형태를 압축시키고 의미를 부여해 명징한 형상들은 분명코 회화의 기원이자 인간 사고의 조형적 핵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기호는 언어인 것이다. 인간은 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정교화 된 기호 즉, 이미지로써 사물을 기억하고 구조화 한다고 한다. 이는 이미지가 문자에 선행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정교한 기호와 상징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미지의 삶과 죽음은 플라톤에서부터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회화의 발전과 논의의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이미지에 인류가 축척해 온 선험적인 세계가 투영되거나 형이상학적이고 비가시적인 세계가 투영되어 고도의 상징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르치아 엘리아데가 이야기하는 상징이 신성으로 다시 예술로 승화되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종교미술의 정교화 된 상징성이나, 민화와 같은 유추나 은유 같은 문학적인 의미들의 체계적인 정리나 구조화에서 볼 수 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황부용은 모더니즘의 주제라 할 수 있는 기호에 관한 새로운 회화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힐링 그래피즘이란 용어를 만들어냄으로써, 오랜 시간 상업 디자이너로써의 고민과 문제들을 회화적ㆍ서술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자연과 인간이 도상적으로 결합하거나 이탈하는 방식이나 자연과 자연이 현실을 뛰어넘는 세계로 교합하고 있다. 자라나는 나무는 인간의 신체를 닮아 있거나 인간이 나뭇잎인지, 나뭇잎이 인간인지 두 개의 주제는 호환된다. 그의 나뭇잎은 종류와 상징성이 다양하다. 기독교의 도상성이 강한 종려나무, 동양 유교의 높은 학문적 이상을 상징하는 은행나무와 같은 잎사귀를 그림으로써, 하나의 상징적이고 단순화 된 기호를 연출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힐링 그래피즘은 이러한 종교적ㆍ문화적 상징성이 강한 물질들을 조형화함으로써 마치, 민화가 벽사와 부귀ㆍ영화ㆍ장생과 같은 기복을 빌었던 구조적이고 상징적인 기호이자 회화였던 것처럼 그가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힐링 그래피즘 작품들 또한 종교적ㆍ역사적ㆍ문화적ㆍ정신적 기원을 담은 회화라 하겠다.

.....사실, 후기 산업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화두는 인간 본연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기물인 인간이 이제야 깨달은 자성의 목소리인 것이다. 웰빙ㆍ세로토닌ㆍ아프리카ㆍ식물성ㆍ아바타와 같은 판타지, 이 모두는 작금에 일고 있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류의 평안과 안락을 꿈꾸는 원시사회로의 회귀, 물질문명에 병든 인간의 치유에 관한 언어들이다.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은 화면으로부터 오는, 감상으로부터 오는 회화적 치유와는 일정한 거리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치유는 그가 구현하는 상징성 속에서 건져 올리는 인간의 염원을 품은 신비한 만다라나 얀트라와 같은 성격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푸른 잎사귀들은 젊은 생의 기운이 약동하고 인간을 저 먼 세계의 휴식으로 끌고 들어가는,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깊고 아득한 색을 품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황부용 작가가 정교한 상징체계 속에 녹여내고 있는 나뭇잎과 회화적 어법이 버무려진 힐링 그래피즘의 모습인 것이다.

.....[월간 전시 가이드 2011년 3월호]


힐링 그래피즘

황부용/ 힐링 그래피즘 아티스트


.....그래피즘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위키피디아에 겨우 그 언급이 있을 정도다. 그래피즘이란 한마디로 구상적인 상징 형태로 인간의 원초적인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피즘의 역사는 기원전 약 30,000년부터라고 한다. 그것은 발생 당시부터 사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었다.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에 대한 추상조형이었다. 실물의 묘사가 아닌 상징적인 변환으로서 문서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나는 왜 오랜 세월 원초적인 그래피즘에 주목해왔는가? 인간의 진보가 반드시 종교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전깃불을 환하게 밝힌다고 해서 사람 마음속의 두려움까지 쫓아내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흔히들 예술은 시대정신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 발표한 나의 작품들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된 2010년대 한국인들 고뇌의 한 단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풍요하다고 하는 이 시대, 그러나 세계최고의 자살율과 높은 이혼율, 도처에 넘쳐나는 청년실업과 끊이지 않는 성범죄들은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한다.

.....기독교에서는 찬양의 치유효과를 강조한다. 찬양이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믿음이다. 열정적인 찬양을 통해 성도들은 은혜를 받는다. 마음의 상처와 원망이 치유되고, 쓴 뿌리가 제거되며, 분노가 가라앉고, 사악한 충동이 사라지는 놀라운 인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편, 부적은 종이에 글씨ㆍ그림ㆍ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재앙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이다. 기원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바위나 동굴에 해ㆍ달ㆍ짐승ㆍ새ㆍ사람 등 주술적인 암벽화를 그린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겠다. 부적은 승려ㆍ역술가ㆍ무당들이 만든다. 최근에는 전국의 사찰 등에서 많은 숫자의 달마도가 제작되어 불교신자 등의 가정에 소장되어 부적의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에 동원된 실루엣 기법, 상징적이고 기호화 된 반면영상들은 주제 이외의 것들을 동원하지 않아 마치 심벌이나 트레이드마크처럼 단순명쾌하다. 그래서 힘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가 많지만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좌절을 경험한 수험생들, 인간관계의 덫에 걸린 사람들이나 병마와 싸우거나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은 물론 축복과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들, 천지와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살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힘과 용기, 지혜와 명철, 부활과 치유를 확신할 믿음이 필요하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그러한 믿음을 도와주는 기능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그래피즘은 30,000년 전의 주술적인 그 그래피즘의 재현은 물론 아니다. 기호나 부호도 아니고 오히려 사실적인 실루엣의 묘사ㆍ합성ㆍ나열을 기초로 한다. 그리고 미신적이거나 역술적이거나 종교적이지도 않다. 의미론과 기호학적 구문론과 화용론, 조형심리 이론과 색채심리 이론 등을 기반으로 한 회화적인 드로잉 일뿐이다. 고도정보화사회라고 하는 21세기 선진 한국의 그늘에는 사이비 종교인들이 만든 해괴한 조형물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한 영역도 합리주의를 지향해 온 나와 같은 그래픽디자이너 출신 아티스트가 해결해야만 할 숙제가 아닐까?

.....수채화 기법에는 과연 독특한 힐링 효과가 있을까? 수채화는 물을 사용한다. 나의 작품에는 물이 흐르고 마른 흔적이 얼룩의 형태로 남아있다. 물은 생명이고 힘이며 에너지다. 그리고 감성적인 텍스추어가 가져다주는 수채화의 아름다움, 그것은 맑고 청순하며 치료약으로서의 효능도 가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만약에 창조ㆍ부활ㆍ치유를 단 하나의 컬러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의 선택은 단연 연두색이다. 또 다른 색채언어로는 라이트 그린이요, 라임 그린이요, 메이 그린이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올 때 잿빛 대자연은 온통 메이 그린으로 변해버린다. 그렇다. 그것은 창조요, 부활이요, 치유의 색채인 것이다.

.....프린세스 트리의 잎사귀는 하트 모양을 형성하며 기뻐하며 춤을 추는 젊은 여성의 실루엣을 연상시킨다. 나는 프린세스 트리ㆍ플라타너스ㆍ포도ㆍ목련ㆍ벽오동ㆍ감ㆍ은행ㆍ고무 등의 나무 잎사귀에서 하나님이 창조해놓은 그래피즘을 발견했다. 잎맥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주가 느껴진다. 잎사귀들은 빅뱅과 천지창조, 수없이 많은 은하계와 블랙홀까지도 다 유추해 낼 수 있는 천기의 지도이며 그래서 그 무엇보다 효험 있는 그래피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잎맥에서는 우주의 생성원리마저도 느낄 수가 있다. 나는 자궁 속 태아의 핏줄처럼 살아 움직이는 잎맥을 그리고 싶었다. 지렁이나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생동하는 잎맥을 화폭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의미 있는 잎사귀들을 과장해서 크게 그리고 건강한 누드의 반면영상들과 합성하고 싶었다. 건강미와 에로티시즘이 넘치는 여인들의 실루엣이라든가 다이버나 보디빌더들의 다이내믹한 반면영상 등과 결합하고 싶었다. 오뉴월의 푸른 잎사귀들의 이미지와 독수리 날개 치며 하늘 높이 올라가는 실루엣도 합성하고 싶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유쾌하게 활보하는 젊은 여성의 반면영상이라든가 구름을 낚아채려는 듯 마음껏 뜻을 펼쳐보고 싶어 하는 야망의 계절에 대한 스토리도 담고 싶었다. 병약한 사람들에게는 천하장사의 꿈을 꾸게 하고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과 신부들에게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였느니라."와 같은 성서에 기록된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다.

.....플라타너스는 추위에 강하고 봄이 되면 에너지가 터질듯이 왕성해져서 힘차게 자라난다. 옮겨 심는 것도 아주 쉽고 어디서나 잘 자란다. 그래서 가로수와 공원수로 널리 심고 있다. 오래된 플라타너스의 실루엣에서는 마치 일필휘지로 힘 있게 갈겨 쓴 굵은 붓글씨와 같은 정기가 느껴진다. 플라타너스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배출하는 매연이나 먼지를 들이마시고 깨끗한 공기로 만들어 내뿜어준다. 그래서 공기를 맑게 해주는 것이다. 플라타너스와 같은 인생은 복이 있을 것이다.

.....봄이 찾아와 잿빛 포도나무 가지에 연두색 잎사귀가 돋아나 자라기 시작하면 농부는 즐거운 마음으로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뜨거운 여름날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포도는 예로부터 다산을 의미했다. 다복과 재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재물이든 자손이든 포도의 이미지는 밝고 풍요한 미래다. 우리 선조들은 축복을 기대하며 포도 그림을 그려서 집안에 걸어두기를 좋아했다.

.....대망의 대표적인 상징으로는 플라타너스ㆍ팔손이ㆍ벽오동 잎과 함께 팜 트리를 선택했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철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무엇이든지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때가 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팜 트리는 전 세계의 열대에 분포하며, 기원이 오래된 식물로서 백악기부터 화석이 나온다. 30년 이상 자란 뒤에라야 비로소 잎겨드랑이에 거대한 꽃차례가 달리며, 열매를 맺는 것과 동시에 전체의 생장을 멈춘다.

.....팔손이나무는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로 비진도와 거제도 등에 자생하며 남부 섬 지방에 많이 심겨져있다. 직사광선에는 잎이 상하고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겨울의 문턱에 꽃이 핀다. 팔손이 잎사귀는 강한 생명력을 표현한다. 봄에 피는 꽃들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들이 있으며 또 가을에 피는 꽃들도 있다. 그리고 더러 겨울에 피는 꽃들도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두툼한 고무나무 잎사귀를 바라보면 힘이 솟는다. 바디 빌딩으로 형성된 야성미 넘치는 사나이의 몸매처럼 건강미가 흘러넘친다. 고무나무는 열대에서 왔다. 고무는 탄력성 고분자의 일종이다. 고무는 적절한 힘을 주어 잡아 늘리면 늘어나고, 힘을 멈추면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고무나무 잎사귀는 유연한 삶과 사고를 상징하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병들거나 벌레가 생기지 않아 대도시의 오염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또한 여러 가지 공해물질을 정화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은행나무는 오래 산다. 수형이 크고 깨끗하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

.....벽오동나무는 예로부터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서당이나 정자 근처에 즐겨 심었다. 벽오동은 곧고 푸르고 시원스럽다.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인생의 상징이다. 우리 조상들은 벽오동나무에 봉황이 깃들어 청아한 소리로 울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믿었다. 크고 넓은 잎은 마치 하나님의 손처럼 믿음직한 우산의 형상이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벽오동을 파라솔 트리라고 부른다.

.....불교의 신앙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연은 진흙 속에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인도의 고대민속에서는 여성의 생식을 상징하고, 힘과 생명의 창조를 나타낸다. 또한 풍요ㆍ행운ㆍ번영ㆍ장수ㆍ건강ㆍ명예의 상징 또는 대지와 그 창조력, 신성 및 영원불사의 상징으로도 삼았다. 중국에서는 불교 전파 이전부터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이 달리는 연꽃의 모습을 보고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이미지로 노래했고 종자가 많이 달리는 생태를 다산의 징표로 삼았다.

.....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네이밍이다.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추위도 잘 견디고 공해도 잘 이겨낸다. 1982년 일본의 어느 농촌 마을에서 약 2,000년 전에 목련이 서식했던 흔적을 발견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씨앗 중 일부를 심었더니 놀랍게도 싹이 텄다고 한다. 4월이 오면 꽃이 잎보다 먼저 피며 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려 가장 먼저 부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늦가을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열매는 가을의 정취와 풍성함을 느끼게 해준다. 감나무를 칠덕수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일곱 가지 덕이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즉 수명이 길고, 녹음이 짙으며, 아름다운 단풍과 맛있는 열매, 훌륭한 거름이 되는 낙엽, 그리고 날짐승이 둥지를 틀지 않으며, 벌레가 생기지 않음을 이르는데, 한 마디로 버릴 것이 없는 이로운 나무라는 뜻이다. 감나무의 잎은 마치 가죽과 같은 질감이며 광택이 나서 건강미가 넘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속에는 우산과 벌새도 등장한다. 우산을 준비해두면 비바람이 불어도 걱정이 없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적어도 세 개 정도의 우산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우산들은 건강ㆍ인격ㆍ실력을 상징한다. 벌새는 부지런히 살아간다. 벌새는 생존을 위해 1초 동안 무려 50여회나 날개를 퍼덕인다고 한다. 한 쌍의 벌새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고통의 세월도 달콤할 수 있다는 의미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서두르지 말고 우선, 우산부터 준비해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오게 되어있다.

.....나의 작품 속에는 트랜스포터도 등장한다. 살다보면 예기치 못했던 기쁜 소식들이 찾아온다. 그것은 마치 찌를 듯이 하늘높이 성장한 팜 트리를 싣고 오는 트랜스포터와도 같다. 상상 못할 무언가를 기대하며 낙천적으로 살다보면 좋은 날들이 올 것이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팜은 형통할 날들의 상징이다. 큰 나무 일수록 겨울에 옮겨 심는 것이 좋다. 나무는 생장 활동을 멈추고 죽은 듯이 긴 겨울잠을 자고 있지만 봄이 되면 잔뿌리가 내리고 대지의 수분을 흠뻑 빨아들이며 모든 가지에서 보란 듯이 연두색 잎사귀들이 힘차게 돋아날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이 겨울이라고 생각된다면 마음속에 큰 나무를 옮겨심기에 정말로 좋은 계절일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64년 그래픽디자인 분야에 입문해 4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젊었을 때는 한 인간이 평생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보였지만 60년 정도를 살고 나니 일생을 바쳐 어떤 분야에서 무언가 독보적인 업적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우아하게 늙어갈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현재 한국 남자들의 기대수명이 78세 정도라고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60세 전후의 한국 남성들이 기대하는 수명은 대게 90세이다. 이제 오래 사는 것보다는 곱게 늙어가는 것이 화두다. 흔히들 우아하게 늙어가는 비결은 영원한 현역으로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나이테에 어울리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늙음을 감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드러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년이 주는 장점을 발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60대 이후에 대표작을 내놓았다. 하이든은 '천지창조'를 66세에 작곡했고 소포클레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 왕'을 썼으며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다. 앵그르는 그의 대표작 '터키탕'을 82세의 나이에 그렸다. 레오 리오니도 삶의 황혼기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픽디자이너로서의 인생을 살다가 은퇴를 결심한 후 8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무려 40여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지난해 5월,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통영의 피카소라고 불렸던 전혁림 화백의 만년 인생 열정도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93세가 되었던 해 12월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남은 인생, 힐링 그래피즘의 연구와 개발로 영원한 현역이 되어 구름에 달 가듯이 유유자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인생도 나는 쉬지 않고 무언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부지런히 살아가리라. 나의 하나님께서 내 앞길에 빛이 되어주시고 옆에서 손목을 잡아주시고 등 뒤에서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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