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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용 힐링 그래피즘의 생명성에 대하여
- 변증법적 결합에 의한 생명성의 형상화
허기영(휴매니메드)/ 블로거
.....녹색이라는 색채에서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대상들은 다음과 같다 ― 나무ㆍ풀ㆍ싹ㆍ채소.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엽록소로 가득 찬 대상이라는 과학적 묘사가 적합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좀 더 순화한다면 '생명 활동'이라는 말로 쓸 수 있을 것 이다. 그렇다면 생명 활동이란 무엇인가? 생명 활동이란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살아 숨 쉰다는 것은 동적 대상인 동물뿐만 아니라 정적인 대상인 식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숨 쉰다는 것은 끊임없는 운동의 과정이며, 존재의 상태이다.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 ― 힐링 그래피즘이라는 용어는 황부용 작가 스스로 선택한 단어이다. ― 은 그러한 '생명성'의 문제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가 사용한 색채와 대상, 모두 생명성을 관습적으로 나타내는 것들이다. 색채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 역시 수채화가 주를 이루어 물이라는 또 다른 생명성의 대유 대상을 이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피상적 차원에서의 인식만으로도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생명성'이라는 것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비평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황부용이 생명성이라는 관념을 구상화하고 있는 방식이다. 나는 그 방식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빌려서 질료와 형상의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질료적 측면
.....황부용의 작품의 질료적 특성을 분석해 보자. 먼저 황부용의 작품은 종이에 흡수된 수채화 물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채화 물감이라는 질료는 번짐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번짐이란 곧 우연성을 의미한다. 한 방울의 물감을 종이 위에 떨어뜨리는 순간 물감은 종이의 면을 타고 자유로운 운동을 하게 된다. 화가는 그 운동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는 있지만 ― 붓질을 그림의 오른쪽 위에 하였는데 번짐의 대상이 왼쪽 아래에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고, 실체로 드러나는 물감들의 구현은 우연이라는 것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이는 마치 잭슨 폴록의 작품의 특성과 유사하다. 잭슨 폴록의 작품은 우연에 근거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잭슨 폴록이라는 화가의 의도에 의해서 구현된 우연이다. 나는 이것을 '의도가 개입된 우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의도가 개입된 우연은 ① 필요에 의해서 생성될 수 있고 ② 의도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으나 ③ 그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의도가 개입된 우연에서 우연은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자연법칙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측하기에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필요로 하며, 너무나도 복잡한 대상들의 상호 작용을 해석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결과값은 단일한 것으로 존재하게 된다. 관찰자는 번짐이 일어난 대상을 쉽게 지각할 수 있으며, 그 대상은 한 가지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예측될 수는 없으나 존재하는 것이 바로 번짐에 의해 구현된 수채화 물감의 특성이다. 무수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는 반드시 선택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지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순간 인간은 불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무수한 상호작용들의 결과물들을 전혀 분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좌절감에 의해서 크게 지배받지 않는다. 우리가 물감이 어떻게 번져 가는 지에 대하여 알 수 없다고 하여도, 그것이 번짐의 결과물을 본다는 사실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이성이 무수한 자연법칙에 의해서 실체화된 결과물을 아무런 문제없이 '물감이 아름답게 번져 있다'는 방식으로 이해함으로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 상태이다. 물감이 어떻게 번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으나, 그 무지의 상태가 미적 감상에 위해를 끼치지 않으며, 인간은 그것을 인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쾌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칸트를 빌리자면 숭고한 대상에서 얻어지는 미적 쾌감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의도가 개입된 번짐'의 효과에서 '의도'에도 주목한다. 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작가 황부용이 물감의 번짐의 정도를 어느 정도 조절하였다고도 인식할 수 있다. 잭슨 폴록의 작품과 황부용의 작품의 번짐 효과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 의도의 차이에서 온다.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각종 우연의 효과 ― 이를테면 그의 대표작인 '가을의 리듬'을 살펴본다면 ― 는 우연의 효과 자체를 작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연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황부용의 작품에서 번짐의 효과만으로 작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번짐은 나뭇잎에서 생명성을 보다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우연의 효과는 나뭇잎이라는 형태 내에서 유효하다. 만일 초록색 수채화 물감 한 방울을 종이 위에 찍어서 번짐의 효과를 얻는다고 할 때, 이 번짐은 생명성이라는 의도에 봉사하지 못한 채, 전혀 다른 성질을 갖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황부용의 작품들에서 사용된 수채화의 특성인 번짐의 효과는 생명성이라는 의도에 봉사하는 우연이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이 생명성이라는 의도는 다음에서 논의할 형상의 측면에서 구체화될 것이다.
.....형상을 논의하기에 앞서서 그의 작품의 또 다른 중요한 질료적 측면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녹색이라는 색만 사용하였다. 이 역시 그의 작품의 중요한 질료적 측면이다. 녹색이라는 색채는 앞에서 논의한 수채화 물감이라는 질료적 특성과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수채화 물감에서의 녹색과 유화 물감에서의 녹색은 색채가 유사하거나 극단적으로 같다고 하더라도 결코 같은 존재는 아니다. 물감은 색채와 질감이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조직된 대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녹색 수채화 물감이라는 것은 녹색 유화 물감이나, 노란색 수채화 물감과 구별되는 특성을 지닌 존재이다.
.....녹색에 대해서 좀 더 구체화볼 필요가 있다. 황부용의 녹색은 대체로 연두색이라고 인식되는 ― 황부용은 이 색들을 디자이너의 색채용어를 사용하여 '라이트 그린ㆍ라임 그린ㆍ메이 그린'이라고 언급하였다 ― 색채의 인간적 스펙트럼 내에 위치한다. 이것은 자연이라는 관념화된 대상을 우리가 인식할 때 떠올리는 여러 가지 형상들 ― 새순ㆍ나뭇잎 ― 에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색들이다.
.....이 색들은 보편적이면서도 어느 정도는 지역적이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녹색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인간은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식물의 엽록소가 반사하는 빛의 파장이 인간의 감각 기관에 야기하는 색을 떠올리게 된다. 굳이 여기에 진화론적인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접하게 되는 식물은 지역에 따라서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북유럽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인식하게 되는 식물들은 주로 침엽수가 될 것이고, 따뜻한 온대 지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는 식물들은 그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녹색이라는 색채와 식물을 강하게 병치시켜 생각하지만, 그들이 인식하는 식물은 인식하는 사람이 익숙하게 접한 특정한 식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황부용이 제시한 녹색이라는 것은 지역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익숙함'이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익숙하다는 것은 곧 환경적 요인에 관한 특성이다. 익숙한 대상들은 시간적으로 자주 인식될 수 있어야 하며, 공간적으로도 곳곳에 널리 퍼져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시간적ㆍ공간적 편재(遍在)는 곧 문화라는 요인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 익숙함이라는 상태가 지닌 편재성(遍在性)을 황부용의 녹색에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자. 황부용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녹색들은 익숙한 색이다. 작가 황부용이 언급한 것에 따르면 이것은 플라타너스의 색이 될 수도 있고, 포도나무의 잎사귀 색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작가 황부용의 시선에서 익숙한 대상들이며, 이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적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황부용의 그림은 한국의 지역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적 특성은 이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부여하게 되고, 이는 다음에서 논의할 형상적 특성과 결합하여 생명성이 더 강화되게 된다.
형상적 측면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 작품의 질료적 측면은 형상적 측면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리고 그 관계가 생명성의 형상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먼저 힐링 그래피즘에서 나타나고 있는 각종 형상들을 분석해 보고, 그 특성들과 질료적 측면에서의 연관성에 대해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황부용의 작품의 형상적 특성을 보기 위하여 구체적인 작품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질료적 측면의 특성들이 황부용의 그림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들이라고 한다면, 형상적인 특성은 작품군(作品群) 들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서 분류함으로써 확인될 수 있다.
.....먼저 황부용의 작품군들 중 '장정의 꿈'과 '벌새와 우산'을 살펴보자. 이 작품들에서는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익숙한 형태들이 등장하고, 제목에서도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형태가 모두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군 '장정의 꿈'은 두 가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벌새와 우산'도 그러하다. '장정의 꿈'을 구성하는 두 작품은 모두 식물의 잎과 사람이라는 형태를 분리해 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벌새와 우산' 역시 약간의 변주는 있지만 우산과 벌새를 분리해 낼 수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나는 '분리'라는 특성으로 언급할 것이다. '분리'의 특성에 속하는 작품군들은 ① 익숙한 대상들이 존재하고 ② 그 대상이 다른 대상과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특성의 작품군들은 구체적인 대상을 매우 간단하게 구별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함과 안정감을 준다. 작품군 '힘이 솟구치는 날들을 위하여' 역시 '분리'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뭇잎과 인간이라는 대상을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리'의 특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분리의 특성은 익숙함과 이질성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된다. 먼저 익숙함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쉽게 분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익숙함은 앞서 질료적 특성에서 언급한 녹색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익숙함과 결합되게 된다.
.....그리고 그 결합 방식은 이질성이라는 측면과 관계가 있게 된다. '분리'의 특성을 지닌 작품들은 자연물과 인간(인공물)이라는 대립되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벌새와 우산'에서는 자연물 벌새와 인공물 우산이 대립되며, '장정의 꿈'에서는 자연물 은행잎과 인간이 대립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앞에서 언급한 녹색이라는 '익숙함'의 질료적 특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그 특성에 의해서 생명성이라는 주제로 결합된다. 여기서 대립은 해소되며, 자연과 인간은 합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논의할 것은 '결합'의 특성을 지닌 작품군이다. 이 특성의 작품군들은 분리될 수 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결합의 특성은 '분리'의 특성의 반정립(안티테제)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결합의 특성을 지닌 것은 낯설음과 동질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황부용의 작품군들 중 '대망을 위하여'가 이에 해당한다. '대망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인공물과 자연물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에 낯섦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동질적이다. 이들은 분리의 특성을 지닌 것과 달리 본질적으로 합일된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발전된 차원의 자연과의 합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특성으로는 '분리'와 '결합'의 특성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형태가 있다. 이것은 황부용의 작품군들 중 '위를 보고 걷자'가 해당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분리와 결합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위를 보고 걷자'에서 자연물과 인간은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인간의 일부는 자연물에 양각되어 있고, 일부는 음각되어 있다. 이들은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결합되지 않은 상태이다. 인간의 다리는 나뭇잎의 모양으로 되어 있으나 다리는 나뭇잎으로 되어 있지 않은 인간의 상반신의 형태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다리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변증법의 실체적 구현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분리의 상태 자체가 곧 결합을 의미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상태는 독특한 제3의 상태를 만들게 되며, 이들은 다양한 비율로 변주된다. 나뭇잎이 다른 식물의 것으로 대체되기도 하며,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것은 곧 자연과 인간의 분리 그 자체로서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도출하게 되며, 이들의 관계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이 얻어진다.
.....이 명제에 앞에서 논의한 '의도가 개입된 우연'을 결합시킬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분리되었지만, 그 순간 합일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의도적이지만 우연적이므로 무수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생명성의 아름다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성이란 결과적으로 끊임없는 운동이다. 생명성은 안정성에서 우러나온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식물들에서 자연의 안정감과 푸근함을 느낀다. 이들은 우리와 분리되었기 때문에 익숙함의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생명성은 안정적이지 못한 관계에서도 나온다. 자연과 인간은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지만 신선하다. 그러나 불안정하다. 그리고 이 안정과 불안정, 익숙함과 낯설음, 이질성과 동질성, 분리와 결합은 변증법적으로 합일되어 독특한 제3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 순간 생명성의 아름다움이 구가된다.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은 결과적으로 변증법의 생명미학을 구현한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면서 논의는 종결된다.
.....[네이버블로그 2011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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