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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여자 61X73cm 캔버스 위에 유채 2014

춤추는 사람들

황부용/ 힐링 그래피즘 아티스트


.....지난 2011년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13일간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황부용 힐링 그래피즘'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정확하게 4년 만인 2015년 3월 18일부터 31일까지 14일간 선(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선갤러리는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77년 한국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고 김창실 님이 설립한 서울의 대표적인 화랑 중 하나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네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춤추는 사람들'을 주제로 2013년과 2014년에 제작한 유화 작품 총 77점 중 54점을 추려 전시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신체적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정신적 충격은 심리적으로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우리 몸 안에 에너지 형태로 담겨져 아무리 없애거나 부정하려고 해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오게 된다. 나의 힐링 그래피즘은 예술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인간성을 위한 미술이다. 예술을 위한 미술이 모든 미술작품에 내재된 아름다움의 특성에 주목하는 것이라면 힐링 그래피즘은 인간의 일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미술이다.

.....나는 왜 오랜 세월 원초적인 그래피즘에 주목해왔을까? 인간의 진보가 반드시 종교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전깃불을 환하게 밝힌다고 해서 사람 마음속의 두려움까지 쫓아내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찬양의 치유효과를 강조한다. 찬양이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믿음이다. 열정적인 찬양을 통해 성도들은 은혜를 받는다. 마음의 상처와 원망이 치유되고, 쓴 뿌리가 제거되며, 분노가 가라앉고, 사악한 충동이 사라지는 놀라운 인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편, 부적은 종이에 글씨ㆍ그림ㆍ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재앙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다. 기원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바위나 동굴에 해ㆍ달ㆍ짐승ㆍ새ㆍ사람 등 주술적인 암벽화를 그린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겠다. 부적은 승려ㆍ역술가ㆍ무당들이 만든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에 동원된 실루엣 기법, 상징적이고 기호화 된 반면영상들은 주제 이외의 것들을 동원하지 않아 마치 심벌이나 트레이드마크처럼 단순 명쾌하다. 그래서 힘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가 많지만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그러한 믿음을 도와주는 기능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그래피즘은 3만년 전의 주술적인 그 그래피즘의 재현은 물론 아니다. 기호나 부호도 아니고 오히려 사실에 가까운 실루엣의 묘사ㆍ합성ㆍ나열을 기초로 한다. 그리고 미신적이거나 역술적이거나 종교적이지도 않다. 의미론과 기호학적 구문론과 화용론, 조형심리 이론과 색채심리 이론 등을 기반으로 한 회화작품일 뿐이다.

.....2012년 10월 4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영국의 UK 차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2주 연속 올랐다. K-POP의 진정한 세계 진출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64위로 처음 오른 다음 주에는 11위,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내리 2위를 계속해서 달렸다. 그날 저녁에는 유튜브가 중계하는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열린 싸이의 축하 공연엔 무려 8만 명이 운집했다. 관객들은 싸이와 함께 '말춤'을 흥겹게 추며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것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의 열기를 방불케 할 만큼 뜨거웠다. "그래 저게 바로 힐링이야~!" 그날 밤 나는 감탄을 연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은 내가 1994년에 그렸던 한 유화 작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옥수동에 사는 내 조카가 소장하고 있는 그 그림은 마주보고 춤을 추는 두 사람의 실루엣을 마치 무척추 동물처럼 리드미컬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단 한 번도 춤추는 사람들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싸이가 서울광장에서 공연을 치루고 난 이틀 후 토요일 주말 아침, 나는 고교동기동창생의 딸 결혼식에 가려고 선물로 그린 그림 액자 한 점을 찾기 위해 단골 액자가게에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2015년 나의 힐링 그래피즘 개인전의 테마를 '춤'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때 나는 이미 2011년 개인전 이후로 그 연장선상에서 30여점의 드로잉과 15점의 유화를 완성해 놓았던 시점이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춤ㆍ막춤ㆍ댄스ㆍ댄서ㆍ탱고ㆍ발레ㆍ무용ㆍ탈춤ㆍ승무" 등 춤과 관련된 많은 언어들로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셀 수도 없이 현란하게 많은 수천 수 만점 춤의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의외로 대부분이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어, 왜 이렇게 춤과 관련된 그림들이 귀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리 마티스의 춤 그림의 감동이 내게 새롭게 다가와 다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심리학 용어 중에 전경과 배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경계선을 접하는 두 영역이 있는 한 장면에서 지각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전경이라 하고, 그 외의 나머지를 배경이라 한다. 전경과 배경이라는 용어는 흔히 전경이 앞에 있고 배경은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용되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전경과 배경의 경계선은 전경에 부속된 것처럼 보이고, 전경은 배경에 비해 잘 정의된 형태로 보인다. 또한 전경은 배경에 비해 더 밝게 보인다.

.....전경과 배경의 관계는 원래 지각에 있어서의 구성적 경향을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인간의 시각은 분절되며 대조가 되어 경험된다. 요약하면 두 부분이 경계를 상호 공유할 때 전경은 뚜렷한 형태를 지니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로 배경은 단지 뒤에서 배경을 구성해 준다는 것이다. 전경과 배경을 구별하는 몇 가지 요인으로는 전경은 분명한 꼴을 갖고 있으며, 지각하는 자에게 더 가까이 느껴지고,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며, 더 인상적이며 기억에 남고, 더 밝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시지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지각ㆍ운동성ㆍ정서ㆍ사고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장면 혹은 패턴이 주의와 지각의 대상이 되는 전경과 그 나머지인 배경으로 분리되는 것을 전경과 배경의 분리라고 한다. 심리학에서의 이러한 전경과 배경의 법칙이 조형이론으로 건너오게 되면 도형과 배경의 법칙이 된다. 도형과 배경의 법칙은 인간의 신경계가 구성된 양상 때문에 작용한다. 눈에 닿는 시각적 자극들은 도형과 배경으로 조직된다. 이 배경을 토대로 도형이 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의한 지각은 동시에 두 개의 배경을 지각하지 못한다. 형과 바탕으로 구별되는 패턴에서 형이 바탕이 되고 바탕이 형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지각적 역전이 가능한 패턴을 가역적 전경 배경이라고 한다.

....."사과를 그리기 보다는 그 사과가 놓인 접시, 접시 보다는 접시가 놓인 탁자, 탁자 보다는 탁자가 서 있는 마룻바닥, 마룻바닥 보다는 그 마룻바닥 위의 공간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아직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고교시절 나에게 회화의 원리를 처음 가르쳐 주신 박춘재 선생님의 가르침이다. 나는 문득 춤추는 사람들을 그려나가기로 작정하면서 1994년에 내가 그렸던 그 춤추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춤추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에너지, 그 기(氣)를 그리고 싶어졌다.

.....마블링은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우연의 효과를 살려 작품을 제작하는 기법이다. 마블링 물감은 다루기 편하고 색이 선명하여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고, 또 매번 찍을 때마다 모양이 달라 아이들의 상상력 향상에 도움을 주므로 주로 아동들의 미술교육에 활용된다. 이 기법은 사실표현 위주의 미술교육에서 벗어나 다소 즉흥적인 색채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아이들로 하여금 우연성에서 미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탐구 자세도 키울 수 있다. 방법은 물이 담긴 용기에 유성페인트나 유화물감을 떨어뜨리고 살짝 저은 후, 표면에 종이를 대어 찍어내고 말리면 된다. 색깔을 잘 배합하면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 춤추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기(氣)도 우리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마블링의 조형 효과처럼 힘과 열정이 넘치며 다소 어지럽기도 하고 또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춤추는 여자다. 나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춤을 추는 여자다. 지금은 주로 살사와 스윙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장르의 춤을 즐기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가장 이상적인 나의 짝은 춤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춤추러 갈 때면 설레기도 한다. 이 중에 한 명이 과연 내 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평생 나와 함께 춤을 출 사람이 나타날까? 꼭 춤을 추지 못하더라도 배워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또한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꿈꾸는 두 번째 이상형. 그러다가 이런 생각도 한다. 춤을 추지도 않고, 배울 의사도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잿빛세상으로 변해버릴는지. 내가 얼마나 생기 없이 지내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악몽 같은 시간들이다. 그래서 다시 기도한다. '부디 춤추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해주세요. 안된다면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나는 오늘도 친구의 소개로 누군가 새로운 한 사람을 만날 계획이다. 새로운 만남은 즐거움도 있지만, 부담감도 함께 있어서 종종 낯선 시간이 무섭도록 싫기도 하다. 부디 모든 것을 떠나서 무엇보다 우선 나와 춤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선 춤추는 단 2시간만이라도 즐거울 수 있도록……." 이 글은 수년전 30세의 어느 춤추는 미혼 여성이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이 잘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구할수록 더 깊게 빠져들게 되고 마는 춤의 진가가 잘 표현되어있다.

.....춤이란 과연 무엇인가?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팔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여 뛰노는 동작이며 음악 또는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춤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육체의 율동적인 예술 활동이다. 무도(舞蹈)라고도 한다. 무도는 원래 춤을 추며 걷는다는 뜻으로, 춤의 동작 및 공간 이동과 관련된 전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시ㆍ음악은 시간 속에 존재 하고 회화ㆍ조각ㆍ건축 등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던 원시시대에 무용은 당시 인류의 최고급 문화요 예술이었다. 그래서 원시 종교와 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춤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자어로는 무용(舞踊)이라고 하는데, 무용이란 팔ㆍ다리ㆍ온몸을 율동적으로 놀려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동작을 말하는 것이다. 무용은 윗몸과 아랫몸을 같이 어우러지게 해 감정과 의지를 리드미컬한 동작과 유연한 선으로 나타내는 예술이다.

.....한국 고전 무용가들에 의하면 한국 춤은 단지 몸의 움직임과 장단 그리고 의상 및 무대 장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춤의 출발과 발달 과정에 끊임없이 보편화 그리고 구체화된 이상이 스며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 춤 속에는 이미 제천의식(祭天儀式)의 경건한 넋, 사회적 축제로서의 가치판단의 마음, 깨끗하고 무한한 에너지 원으로서 몸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과 몸을 다스려 합일된 넋으로 춤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춤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즉 삼태극 합일체제로서 인간이 자신의 본질적인 세 요소를 합일시켜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 춤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하는 작품들 중에는 한 쌍의 무녀가 축제 기간 중에 리본을 펄럭이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들도 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형상은 기호화 된 단순한 실루엣으로 표현하고 오히려 춤추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창출하는 치유(治癒)의 기(氣)를 리드미컬하게 더 강조한 작품. 마치 고대 동굴벽화를 보는 것 같은 장엄함과 함께 흥겹고 역동적이며 힘과 열정이 흘러넘치는 힐링 그래피즘을 추구한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기쁨,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함께 성취한 기쁨, 세계 속의 선진국으로 우뚝 선 기쁨, 성큼 다가온 통일 조국 시대 이후에 대한민국 백성들이 대대손손 누려야할 태평성대의 기쁨을 표현했다고나 할까?

.....춤과 미술의 인연은 깊다. 둘 다 시각적인 해독과정을 거쳐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미술은 춤에서 영감을 받아왔다. 오래전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춤을 그려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예나 지금이나 움직이는 인간을 그려낸다는 것은 화가나 디자이너들을 강하게 이끄는 모티브요 야심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부여의 단골 소재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에게 그림으로 정지시켜 놓은 춤의 이미지들이 가지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드라마 보다는 영화 속에 춤추는 장면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어떤 이는 그것이 "시각의 지배하에 벌어지는 가장 관능적인 미장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춤추는 장면들을 보며 관객들은 관능의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인간의 육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두 가지 표정이 바로 미소와 춤이다. 춤추고 싶어 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관능의 힘을 알고 있다는 것. 손과 발이 벌이는 격정적 리듬, 육체적인 스릴, 꽃의 역할과 벌의 역할이 함께 빚어내는 익사이팅 하머니, 외부의 진동에 종속함으로써 자아를 내부로부터 파괴하는 이 과격하고 현기증 나는 유희는 가히 일상에 대한 작은 반란임에 틀림없다.

.....내가 반면영상(半面影像)이라는 단어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 3학년 때부터였지만 작품으로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77년 '파라솔 쇼우'라는 포스터 작품에서였다. 그리고 1983년부터 약 4년 동안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한 픽토그램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 문제풀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늘 가까이 곁에 두게 되었던 것이다.

.....빛으로 인해 우리는 밝음과 어두움이 있고 실체와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명암이나 그림자와는 다른 비침이라는 것의 존재도 알게 된다. 반면영상은 아름다움을 최소한의 외곽선으로 만 드러낸다. 반면영상을 실루엣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실루엣은 윤곽의 안을 검게 칠한 사람의 얼굴 그림을 일컬었다고 한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재무상 실루엣이 극단적인 절약을 부르짖어 초상화도 검은색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반면영상으로 처음 연극을 시작한 사람들은 중국인들이다. 중국의 그림자극을 피영(皮影) 또는 등영(燈影)이라고 부르는데 장막을 치고 동물가죽으로 만든 인형에 조명을 비춰 생긴 그림자로 연희하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한나라 무제의 애첩인 이 부인이 죽자, 이소옹의 간언으로 초혼을 하기 위해 그림자극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것이 피영의 유래라고 전해진다. 2000여 년 전 중국의 산시지방에서 처음 탄생해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쳐 중국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원나라 시대에는 군대에서 피영 극단을 대동해 원정을 갔기 때문에 중동과 유럽 등지에까지도 중국의 그림자연극이 알려졌다. 당시 피영이 성행했던 지금의 산시성 웨이허 평원 일대에서 상연되던 그림자 연극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르렀고 곡조 또한 수십 종에 이르렀다고 전해온다. 청대(淸代)에 피영 예술은 전성기를 맞아, 궁정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중국의 피영 예술은 지역 색을 반영한 여러 분파가 생겨났으며 이들은 모두 섬세하고 정교한 조형미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나는 지난 2011년 3월의 개인전을 계기로 중학교 2학년 때인 1964년 입문해서 47년간 열정을 쏟아 부었던 디자인계를 떠나 순수미술작가로 변신해 픽토그램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앤디 워홀은 원래 그래픽디자이너였고 인생 후기에 예술가로 전향한 미국인이었다. 한국에서 앤디 워홀처럼 그래픽디자이너로 출발해 회화로 인생을 마감한 사례 중 하나가 되고 싶다. 내 젊었을 적 별명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뚱뚱한 야심가'라는 뜻으로 디자인 분야의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주었다. 일본인이 가장 닮고 싶은 인생관을 지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언 중에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라"란 말이 있다. 지난 64년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28세라는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명의 그래픽디자이너로 선정되는 등 영광된 순간들도 많았지만, 반면에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경험들도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회화로 전향한 이후의 결실들이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자꾸 길어지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질병의 발생이나 사고만 없다면 아마 20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혼자 하는 일이고, 순간순간 평가 받는 일도 아니다. 디자인 작업을 해 오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하는데, '예술은 길고 디자인은 짧다'는 것이었다. 120년 전에 만들어진 제너럴 일렉트릭 로고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빼고는 아무리 잘 된 명작 로고라도 20~30년을 버티기가 힘들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 적어도 몇 백점, 꿈같아서는 몇천점 정도 남기고 죽고 싶은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냐 밤벌레의 울음계곡 별빛 곱게 내려앉나니 그리운 맘 임에게로 어서 달려가 보세 어서 달려가 보세 어서 달려가 보세" 내가 가끔 노래방에서 열창하는 김태곤의 노래 송학사 가사에는 종교적인 뉘앙스가 있다. 마치 인생의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고 난 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만든 노래 같다. 하지만 김태곤이 송학사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했을 때는 그가 군복무 중이었던 20대 중반. 당시 그는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도 아니었고 인생을 안다고 하기에도 이른 나이였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으며 가을에 피는 꽃도 있다. 드물지만 심지어 어떤 꽃들은 겨울에 핀다.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온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실망시켰다. 나 역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헤어지고 버리고 잊어야하는 고통, 그 마음의 아픔에 일일이 주저앉아버렸다면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후세에 오래오래 사랑받을만한 작품 몇 점을 남기는 데 결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37세로 불행했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약 10여 년간 900여점의 페인팅, 1100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약 2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은 대게 생애 마지막 2년 동안에 그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만 있다면 그 실수와 실패는 잊히고 말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2014년 12월]




부활 61X73cm 캔버스 위에 유채

부활의 미학을 찾아서

황부용/ 힐링 그래피즘 아티스트


.....작년 3월,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렸던 나의 힐링 그래피즘 전시회는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이제 내가 죽을 때까지 집착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후, 나는 2~3년 간격으로 반복누적해서 전시회를 열어 애호가들과 마니아들에게 나의 힐링 그래피즘 연구의 프로그레스 레포트를 보여준다는 구상을 했다.

.....1905년에 발표된 미국작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는 내가 추구하는 힐링 그래피즘이 잘 설명되어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존시와 수는 가난한 예술가. 그들은 워싱턴 스퀘어의 서쪽에 살고 있다. 그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사는 지역. 특히 그리니치빌리지는 가난하고 실험적인 젊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다. 존시와 수는 한 식당에서 만나 서로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공동 작업실을 낸다. 하지만 11월이 되자 폐렴이 예술가 부락에 퍼지게 된다. 폐렴은 존시를 강타하게 되고 존시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점점 더 쇠약해져만 간다. 의사는 존시가 살 수 있는 가망이 열에 하나 정도라고 하고 그나마도 그녀가 살아갈 의욕이 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존시는 창 밖에 있는 무언가를 자꾸 센다. 존시는 뿌리가 썩고 마디가 뒤틀어진 담쟁이덩굴에 붙어있는 잎들을 세고 있었다. 존시는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는 그런 존시에게 바보처럼 굴지 말라며 삶의 의욕을 갖도록 위로하나 존시는 그런 수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수는 실패한 늙은 예술가인 버먼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항상 걸작을 그리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떠벌이지만 결코 손도 대지 못하는 화가였다. 약간의 돈을 벌 뿐이었고 그 돈마저도 늘 술을 사서 마셔버렸다. 수의 이야기를 들은 버먼은 눈물을 흘리며 존시의 멍청함을 지탄한다. 그날 밤은 비가 몹시도 많이 내렸다. 한편 위로 올라간 수는 드디어 마지막 잎사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던 와중에 존시는 다음 날이 되어도 또 그다음 날이 되어도 그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죽기를 원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드디어 존시는 점점 회복되어 가고 나중에는 완전히 회복된다. 그 날, 수는 존시한테 버먼이 오늘 병원에서 죽었다는 말을 한다. 버먼은 당시 완전히 몸이 젖어있었고 몸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상태였다. 아무도 그가 어디 있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비가 몹시 내렸던 그날 밤, 버먼은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진 것을 보고 그 잎사귀를 그려 놓은 것이었다. 결국 버먼은 걸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2012년에는 주로 플라타너스 잎사귀와 목련의 잎사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내가 2012년에 플라타너스 잎사귀와 목련 잎사귀에 집착했던 것은 그것들이 부활의 강력한 상징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플라타너스 잎, 자연 그대로의 목련 잎과 내 작품 속의 그것들은 트란스포메이션이 적용되기 이전에 우선 잎맥에서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나는 과장해서 자궁 속 태아의 핏줄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은 잎맥으로 그렸다. 지렁이나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생동하는 잎맥을 화폭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상남도 진해에 소재한 육군대학에서 31개월을 사병으로 근무했었다. 나는 그 때 어느 화창한 봄날, 병영의 막사 한 모퉁이 맨 땅에 새로 심어놓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플라타너스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부목에서 뿌리가 내리고 나뭇잎이 생기며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그 큰 힘과 생명력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플라타너스는 추위에 강하고 봄이 되면 에너지가 터질듯이 왕성해져서 힘차게 자라난다. 옮겨 심는 것도 아주 쉽고 어디서나 잘 자란다. 그래서 가로수와 공원수로 널리 심고 있다. 수피가 비늘처럼 벗겨져 마치 얼룩무늬 군복처럼 강인해 보이고 열매가 방울처럼 달리는 플라타너스의 순 우리말 이름은 양버즘나무다. 오래된 플라타너스의 실루엣에서는 마치 일필휘지로 힘 있게 갈겨 쓴 굵은 붓글씨와 같은 정기도 느껴진다. 플라타너스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배출하는 매연이나 먼지를 들이마시고 깨끗한 공기로 만들어 내뿜어준다. 그래서 공기를 맑게 해주는 것이다. 플라타너스와 같은 인생은 복이 있을 것이다.

.....목련은 양지에서도 음지에서도 아주 잘 자란다. 추위도 잘 견디고 공해도 잘 이겨낸다. 봄이 오면 꽃이 잎보다 먼저 피며 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려 가장 먼저 부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양에서는 흔히 목련꽃을 팝콘에 비유하며, 불교에서는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의미로 목련이라고 부른다. 사찰의 문살 문양에서 보이는 6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은 목련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제목인 뮬란은 중국어로 목련을 발음대로 적은 것이다. 1982년 일본의 어느 농촌 마을에서 약 2000년 전에 목련이 서식했던 흔적을 발견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씨앗 중 일부를 심었더니 놀랍게도 싹이 텄다고 한다. 그야말로 대부활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꽃눈이 붓을 닮아서 목필이라고도 하고, 꽃봉오리가 피려고 할 때 끝이 북녘을 향한다고 해서 북향화라고도 한다. 목련은 한국과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추자군도에 자생하며 오래전부터 대대로 한국인들이 관상용 정원수로 가장 많이 심는 나무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죽어서 열사가 되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영웅이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죽어서 전설이 되기도 하고 극히 드물지만 어떤 사람은 죽고 나서 신이 되었다. 연륜이 좀 쌓인 사람들이 처음 기독교 신앙생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 제일 넘기 힘든 관문은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신약성서가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예수가 죽고 나서 3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부터였다. 각종 통신 수단이 놀랍도록 발달한 21세기에도 30년이라면 아주 긴 시간이다. 30년은 강산이 세 번 변하는 긴 시간으로 지금도 정보가 충분히 왜곡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각종 지식으로 가득한 사람들일 수록 부활은 정말 믿기 힘들다. 30년이라는 세월 속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예수의 측근들이나 따르던 제자들, 바울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이 어떤 계기로 조작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바로 그 버먼이 그려 넣은 담쟁이 잎사귀처럼……. 그러나 종교는 과학이나 철학, 논리나 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력한 종교들 중에서 부활신앙을 대표적인 사상 중 하나로 내세우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다. 기독교에서는 보고 믿지 말고 듣고 믿으라고 한다. 예수가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서 우리네 각종 세상사와 인생살이에서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 만 같았던 문제들이 해결되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 무조건 믿고 볼 일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참뜻은 무엇일까?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이 되면 "할렐루야!"라고 외치면서 기쁨을 노래한다. 할렐루야란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부활이란 과연 무엇일까? 말 그대로 해석하면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인간들은 부활을 체험할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 인간들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죽은 후의 부활이 아니라 살아생전의 부활인 것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그대로 있고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살아생전에 부활을 맛보라는 것이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부활도 단순한 시체의 부활은 아니다. 제자 둘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났지만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성서의 기록은 살아있을 때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예수가 달랐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이 가르치는 메시지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는 다른 삶을 말한다. 깨달음에 따라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똑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른 인생관과 다른 세계관을 갖게 해 준다.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찾아가 보면 일제 암흑기에 우리 한민족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아낌없이 바쳤던 많은 선교사들이 묻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당시 세계 최고 선진국들의 전도양양했던 엘리트 젊은이들로서 모국에서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특권들을 포기하고 서양에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던 가난한 나라 조선에 기독교 신앙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다 고독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이들은 병원과 학교의 설립과 같은 사회제도에서 뿐만 아니라, 신분제ㆍ남존여비 관습철폐와 같은 무형의 정신세계에서도 우리 선조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더욱이 이들 중 일부는 일제의 무단 강점을 우리들의 선조들과 함께 아파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독립운동을 도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21세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믿고 바라고 원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부활은 20세기 초 양화진에 묻힌 서양 선교사들의 그것처럼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믿고 바라고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활신앙을 통해 가난하고 피폐한 삶 때문에 실의에 빠진 상황에서 힘과 용기를 얻어 물질의 축복을 받고 기울어 가던 사업을 다시 일으키며, 잘못된 인간관계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와 원망 등 정신적 질환을 치유하고 현대 첨단 의학기술로도 쉽게 치료할 수 없는 육신의 질병을 보란 듯이 극복해내는 것이다.

.....기독교의 힘은 부활신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교회사를 통해 고통과 절망의 시대가 닥칠 때마다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신앙은 치유와 희망의 역할을 감당했다. 예수 부활의 역사적 기록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희망을 일깨워 주는 복음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그들의 삶 속에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1899년에 발표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문학작품 '부활'은 실화를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한 귀족 청년이 카추샤란 이름의 하녀를 유혹해 임신시키고 버린다. 카추샤는 일하던 주인집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험한 세파에 휘둘리다 창녀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을 괴롭히던 한 남자를 살해하게 되어 법정에 서게 되는데, 젊은 날 불장난으로 카추샤를 버렸던 바로 그 귀족청년이 배심원으로 법정에 함께 서게 되었던 것이다. 배심원은 여죄수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카추샤임을 발견하고는 양심에 깊은 가책을 느낀다. 그리고 이후 그녀를 돕는 일에 전심을 기울이겠다고 작정한다. 그는 먼저 카추샤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것을 막아내고 시베리아로 유형살이를 떠나는 그녀를 끝까지 도울 목적으로 그녀를 뒤따르게 된다.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여인숙에 머물게 되면서 한 밤중에 신약성서를 펴서 읽다가 부활한 예수의 기록을 접하게 되고 이후 남은 인생은 예수의 향기를 전하며 인간을 사랑하고 돕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작년 10월 작고한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은 '충돌과 파괴의 리더십'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불화했다고 한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목표도 그가 "해야 한다"고 하면 그대로 진행, 하지만 이런 그의 고집이야말로 버튼이 하나뿐인 휴대전화, 본체가 없는 컴퓨터가 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인류가 지금껏 만들어놓은 최고의 것을 자신의 일에 접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세계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준 그의 명언이 있다. "갈망하라, 바보짓을 두려워 말라"

.....나의 지나간 61년 세월을 되돌아보면 비록 벌였던 일마다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는 인생을 되풀이해서 살아오기는 했지만 나는 갈망했고 바보짓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나의 지나간 내 모든 운명과 그 서글픈 결과들까지도 다 사랑하고 즐기며 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록 약간 과체중이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나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나마 이제 힐링 그래피즘이라는 남은 인생을 바칠만한 목표가 정해졌다는 것에 나는 크게 안도한다. 자식들도 다 장성해서 제 길을 찾았으니 내 아름답고 착한 아내와 함께 단둘이 안빈낙도(安貧樂道)로 소박하게 살아가면서 틈틈이 연구한 작품들을 발표할 것이다.

.....작년 3월에 발표했던 나의 힐링 그래피즘 작품들은 주로 수채화로 된 드로잉들이었다. 올 해에는 드로잉 30여점에 유화 소품 15점을 완성했다. 지난 전시에서도 비록 도록에 싣지는 않았지만 유화를 5점 선보였었다. 그러나 도입한 테크닉이 성에 차지 않았다. 지난 전시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64년 그래픽디자인 분야에 입문해 47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래픽디자이너로 살아오면서 오랜 고민 끝에 힐링 그래피즘이라는 사상에 도달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해야만 했다. 유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인 재작년 가을,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온갖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약 6개월 동안 사상이 아닌 방법을 놓고 고민했다. 2010년 정월, 나는 힐링 그래피즘을 웅변할 수 있는 만족할만한 수채화 테크닉은 발견했었지만 2012년 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화에서는 과연 어떤 테크닉을 적용해야할지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힐링 그래피즘을 좀 더 생생하고 살아 숨 쉬는 것처럼 형상화하기 위해서 다이내믹하며 드라마틱한 굵은 브러시 터치의 화가들에 의해 창조된 수많은 작품들에 주목했다. 내가 일련의 힐링 그래피즘 작품들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기호화된 나의 회화적 사상이며 어디까지나 방법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다이내믹하며 드라마틱한 굵은 브러시 터치의 테크닉을 주로 그라운드 처리를 위해 사용했다. 내가 '기(氣)의 공간' 이라고 명명한 마치 무중력 상태 같기도 하고 안개 속 같기도 하고 구름 속 같기도 한 '에너제틱 스페이스'를 만드는데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역동적이고 운동감이 넘치는 인간의 모습으로 트란스포메이션 된 나뭇잎의 형상에는 내가 지난 2011년 3월 개인전에 출품했던 수채화에서 구현했던 바로 그 마치 물이 흐른 흔적이 남은 것 같은 느낌의 테크닉의 적용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물이 흐른 흔적과 같은 느낌을 유화의 테크닉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시간의 고민과 실험 끝에 다량의 페인팅 미디엄과 소량의 유화물감을 유리 병 속에 넣고 잘 흔들어 섞어서 아주 묽은 액체를 만들어서 컬러링 해 보았더니 내가 원하는 효과가 창출되었다. 그래서 비록 수채화에서처럼 많은 면적은 아니지만 잎맥과 잎의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마치 황무지에서 발견한 물의 흔적처럼 작은 면적이 나마 물이 흐른 흔적과 같은 느낌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속에는 높이뛰기ㆍ멀리뛰기ㆍ체조ㆍ축구ㆍ다이빙ㆍ태권도 등의 스포츠 스타들과 독수리ㆍ벌새 등의 반면영상들이 등장한다. 실루엣들은 모두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사진작품들에서 차용한 것이다. 일찍이 사진기술이 발명된 이후로 수많은 회화의 선배들이 사진에서 다양한 형태로 영감을 얻어왔다.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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