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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용

봄에 피는 꽃들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들이 있으며,
또 가을에 피는 꽃들이 있지요.
그리고 더러 겨울에 피는 꽃들도 있답니다.


인터뷰 = 정은미/ 그래픽디자이너: 경희대학교 강사


정은미 = 저는 황 선생님께서는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서 분명한 한 획을 그으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부용 = 한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니 과찬의 말씀입니다. 6O년대 초 서구의 모더니즘 디자인이 상륙한 이후로 어언 4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한국의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상대적으로 각광받았던 인물들 상당수의 작품들이 넓은 의미에서 모방과 표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아직도 한국의 그래픽디자인계가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고 또한 이렇다 할 만한 신세대의 출현도 미미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비록 당대에 안분지족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직업 이상의 그래픽디자인을 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한국디자인계의 여명기를 이끌었던 한 사람으로서 이 쉽게 종식되지 않고 있는 모방과 표절의 세월에 대해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한국의 현대 그래픽디자인은 서구 사회가 이미 완성도 면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60년대에 겨우 그 첫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출발에서부터 약 80여년의 시차가 있어 고유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고 앞으로도 결코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정은미 = 현재 저는 픽토그램에 관련해 연구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경희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강사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후학들을 위해 포트폴리오 홈페이지와는 별도로 그래피스 사이버 아카데미 웹 사이트도 운영하고 계신데 선생님께서 올려놓으신 소중한 자료들이, 일부 무례한 사람들에 의해 출처에 대한 명기도 없이 유출 복사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하군요.

황부용 = 그래피스 사이버 아카데미가 많은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남은 인생 무얼 더 이룩해 보겠다는 큰 욕심보다는 그저 제가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고 얼마 안 되는 지식과 경험이라도 나누고 베풀며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록된 자료의 불법 복제와 관련해 링크를 걸거나 극히 적은 일부분을 출처를 밝혀 소개하는 형식은 환영합니다. 그러나 한 과목 이상을 통째로 전재하는 등의 경우는 관계자들이 직접 만나서 계약에 준하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보상 등에 관한 협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자료들은 대개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 온 것들로 소정의 절차와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투입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로서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했을 때만 성립됩니다. 정은미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경우는 물론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한 점이 무례하기는 하나 특별한 상업적인 동기나 제게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지는 않더군요. 민족의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는 퇴계 이황 선생님은 50세 이후에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ㆍ계상서당ㆍ도산서당 등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습니다. 조정에서는 계속해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건강이 좋지 않은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소망이 벼슬에 있지 않고 학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퇴계의 중요한 저술 또한 주로 노년으로 접어드는 50대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60세에 도산서당을 지어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인도하는데 힘썼는데 선생님의 강학은 돌아가시기 전달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또 그래픽디자인 분야의 전공 특성상, 과거 조선시대처럼 이름 없는 시골 마을 강가 기슭에 기거하면서 하늘의 구름과 들녘의 새들을 벗 삼아 독서와 수양과 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후학들을 훈도할 수는 없겠으나, 남은 인생 비록 부족하지만 존경하는 그 분을 본받아 살고자 3년 전, 그러니까 제 나이 50이 되던 해 그 조그만 사이버 서원을 한 채 마련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 서원에 출입하는 후학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제가 직접 보고 들을 수 없으나 전공자와 비전공자는 물론이고 경향각지 또 멀리 해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생들이 형성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정은미 = 황 선생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대표작이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픽토그램 이라고 할 수 있겠는 데요, 어떤 계기에서 픽토그램 디자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황부용 =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과 관련해서 당시 엠블렘ㆍ마스코트ㆍ 포스터ㆍ사인 시스템ㆍ환경디자인 등 국내의 많은 탑 클래스 디자이너들에 의해 다양한 창작품들이 개발되었으나 거의 유일하게 제가 개발한 픽토그램이 현재까지도 국제사회에서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보람을 느낍니다. 당시 한국의 그래픽디자인계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엠블렘ㆍ마스코트ㆍ포스터ㆍ사인 시스템ㆍ환경디자인 등 소위 아웃풋이 화려한 것에 관심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픽토그램은 당시 제가 실장으로 있던 서울올림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실에서 자체 개발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1972년 독일의 오틀 아이히어씨가 디자인한 뮌헨 올림픽 픽토그램을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에서 구매해 그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가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에 그 저작권을 다시 구매해 줄 것을 꾸준히 요구해 왔습니다. 1985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위한 픽토그램들을 발표했었는데 몬트리올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에서 스포츠 부문에서 동작의 포즈가 비슷하다고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는 재개발을 결정했고 결과적으로 1972년 이후 일관된 스포츠 동작에 데커레이션 스타일만 변화를 주어왔던 스포츠 픽토그램 개발의 역사에 스포츠 동작 실루엣 포착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새로운 어프로치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정은미 = 황선생님의 근황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최근 가장 주력하시는 프로젝트는 어떤 것입니까?

황부용 = 많은 이들이 20세기에 가장 위대했던 그래픽디자이너 한 사람을 꼽으라면 에이 엠 카상드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1920년대 카상드르는 입체주의의 기하학적 질서와 아르누보의 장식적 형태를 혼합한 다수의 단순명쾌한 명작 포스터 아트를 발표, 포스터의 천재로 평가 받으며 20세기 세계 그래픽디자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당시 그래픽디자인계에 남긴 것은 불과 30여점도 안되는 포스터가 전부입니다만 그 작품들은 위대한 유산이 되어 향후로도 지구촌을 움직이는 그래픽디자인 사상과 방법의 바이블로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카상드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서 출생했는데요, 1915년부터 파리에서 거주했고 1936년부터 2년간 뉴욕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만 만년에는 주로 회화와 무대디자인을 즐겨 작업하다가 67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장 미셀 폴롱은 1934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출생했지만 196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했습니다. 주로 죽어야 할 운명에 있는 인간들이 갖는 부조리에 대해 데생으로 유명한데요, 그는 젊은 시절 그래픽디자인 일과 관련해 광고ㆍ출판ㆍ영화ㆍ디스플레이ㆍ환경 등의 일에 다방면으로 관계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엠네스티 인터내셔널과 같은 인권관련 공익사업에 깊이 관련해왔으며 그 이후 최근까지는 조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 두 분의 이력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제가 사실은 3년 전부터 문학과 관련해서 그래픽적인 환경 연출을 위한 입체 조형물 개발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대부분 미발표 상태이기 때문에 저의 작품 경향의 변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궁금하실 것입니다.

정은미 = 황 선생님께서 추구해 오신 디자인 사조가 1960년대 독일에서 발생한 컨셉추얼 디자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그 방향을 고수하고 있으신지요? 아울러 선생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나 작가 혹은 인물 들은 어떤 분들이셨는지요?

황부용 = 그렇습니다. 저는 1969년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만 당시에 폴란드ㆍ미국ㆍ독일ㆍ쿠바ㆍ일본 등에서는 그래픽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수준 높은 개념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그 경향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에이 엠 카상드르ㆍ장 미셀 폴롱ㆍ얀 레니차를 비롯해 특히 귄터 키제르ㆍ귄터 람보우ㆍ오틀 아이히어 등의 독일 작가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물밑에서 연구하고 있는 문학과 관련한 그래픽적인 환경 연출을 위한 입체 조형물 개발 작업들도 저의 컨셉추얼 디자인 연구 행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정은미 = 선생님 말씀 중 "그래픽 디자인은 문학에 대한 조형화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신다면?

황부용 = 제가 전공으로 30여년의 세월을 바쳐 탐구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은 문자와 숫자ㆍ도형ㆍ기호와 부호ㆍ컬러 등을 활용해 시각적으로 인간과 인간 간의 통신을 이루게 하는 각종 수단의 디자인을 말합니다. 서적ㆍ신문ㆍ잡지ㆍ포스터ㆍ상표ㆍ광고 등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타이틀, 웹 사이트의 편집 등 그 응용영역은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가장 먼저 개발한 수단은 소리였습니다. 소리는 말이 됐고 오랜 진화를 거쳐 인간은 말을 기록하는 문자를 발명하게 됐습니다. 그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무언가의 표면에 그리기 시작했고 부호ㆍ기호ㆍ그림ㆍ글자 등의 그래픽적인 형태를 띠게 됐습니다. 문자의 발명은 인간들에게 문명의 영예를 가져다 줬고 사상과 지식과 경험을 보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문자의 발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전자시대인 오늘날에도 그래픽 디자인에서는 문자를 다루는 기술과 감각인 타이포그래피를 가장 중요한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탁월한 서적 디자이너였던 윌리엄 에디슨 뒤긴스로 1922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이미 선사시대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인간은 그들의 아이디어나 컨셉트를 시각적 형태로 표현하고 지식을 형태로 저장하고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처리하는 방법들을 꾸준히 탐구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역사의 그래픽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픽 디자인의 본질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권력과 부와 명예를 창출하는 수단으로서 진화를 거듭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은 다른 어떤 표현 형식 보다 정확하게 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인간들은 오히려 고도로 계산된 그래픽 디자인 감각을 수단으로 해 더 크고 더 많은 권력과 부와 명예를 차지하려 합니다. 좁은 뜻으로는 수필ㆍ시ㆍ소설ㆍ희곡ㆍ평론 따위의 정서와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 문자로 나타내는 예술이나 그 작품을 문학이라고 합니다만, 넓은 의미로는 법률학ㆍ정치학ㆍ자연과학ㆍ경제학 등의 학문 이외의 모든 학문을 통틀어 문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특히 제가 추구하는 것은 갈등과 대비와 반전 등이 담긴 드라마틱한 이미지로서의 그래픽디자인의 문학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은미 = 디자인 작업을 위한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획득하십니까?

황부용 = 과거에는 많은 해외의 자료들을 뒤적이면서 작업해왔습니다만 5~6년 전부터는 거의 새로운 서적들을 구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백지 위에서 지난 50여 년 간의 인풋을 나름대로 다시 반죽해서 저 나름대로 고유한 사상과 방법들을 탄생시켜보려 합니다.

정은미 = 디자인 작업에 임하실 때 먼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황부용 =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 수확을 할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는다. 이익을 얻을 희망이 없다면, 상인이 장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좋은 희망을 품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라고 했는데 저는 주변에 잘 알려진 대로 매우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대할 때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 바로 그 희망을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면서 디자인 작업에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랄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를 자주 떠 올립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정은미 = 저는 대학에서는 원래 도예를 전공했다가 광고 일에서부터 웹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지난 10여 년 간 무척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박사과정을 시작하느냐 마느냐로 고민 중이기도 한데요. 어떤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디자이너와,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작업을 해 나가는 디자이너와는 어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울러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의 자세와 역할에 대해 조언해주신다면?

황부용 = 봄에 피는 꽃들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들이 있으며, 또 가을에 피는 꽃들이 있지요. 그리고 더러 겨울에 피는 꽃들도 있답니다. 아브라함 링컨이란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링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링컨은 평생에 걸쳐 실패와 마주쳐야만 했습니다. 그는 무려 여덟 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했고, 신경쇠약증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링컨은 수없이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링컨은 승리자였습니다. 제가 태어나서부터 여태까지 본 수많은 영화 중에서 베스트 원을 선정하라면 저는 서슴없이 포레스트 검프를 추천하겠습니다. 아이큐가 75에 불과하고 몸까지 불편한 포레스트 검프는 항상 외톨이지만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요. 또한 학교에서 만난 친절하고 예쁜 소녀 제니는 그가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달리기 소질을 깨달은 검프는 미식축구 선수로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합니다. 하지만 제니는 포크송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방황하고, 포레스트 검프의 곁을 떠납니다. 이후 검프는 파란만장한 미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 됩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동료들을 구해내는 공을 세워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기도 하고, 탁구선수가 되어 미국 탁구팀의 중국방문 경기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군대 동료 부바의 유언에 따라 군대 상사 댄과 함께 새우 잡이 사업을 시작해 백만장자가 되지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온 검프는 사업에 성공해 번 돈을 주위에 나눠주고 제니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피폐한 삶을 살고 있던 제니는 검프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검프는 무려 3년 동안 달리기 시작합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제니는 결국 검프를 받아들이지만 제니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게 되지요. 제니가 세상을 떠나자 포레스트 검프는 제니가 남긴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가게 되지요. 조금 황당무계한 만화 같은 스토리 전개이지만 음미해 볼수록 멋진 영화입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에 있는 초콜릿과 같다. 어떤 초콜릿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맛이 틀려지듯이 우리들 인생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라는 명대사를 자주 되뇌곤 합니다.

정은미 = 오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의 인생 설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황부용 = 감사합니다.

[2004년 4월 22일]



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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