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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Prize Winner, International Poster Salon, IAA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Paris 1987.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7.

...............황부용이 2009년 전업화가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33년간 활약하면서 이룬 업적은 크게 일곱 가지입니다. 그 중 하나가 IAA 라는 권위 있는 기관이 주최한 국제포스터살롱에 평화포스터를 출품해서 수상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 명동에 있던 유네스코한국위원회로부터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갔더니 상장은 따로 없었고 수상자와 입선자 명단이 타이핑 된 대회 심사보고서와 전시행사를 기록한 20분 짜리 비디오테이프가 프랑스 파리로부터 도착해 있었습니다.

...............1987년 발표된 황부용의 평화포스터는 대한민국 포스터 디자인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권위 있는 국제 포스터 전시회에 출품해서 입선을 한 경우는 있었습니다만 수상을 한 경우는 최초였습니다. 주최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IAA 즉 국제미술협회였으며 대회의 명칭은 국제포스터살롱이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26표를 얻어 2등상을 수상했는데 27표를 얻어 1등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스타시스 아이드리예비치우스에 이어 최우수 출품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등은 모두 3명이었고 나머지 두명도 폴란드 작가였습니다. 30개 국가에서 600여점이 출품되었고 그 중 150점이 50명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의 투표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20세기에 폴란드는 포스터 디자인의 강대국이었습니다. 형식적인 포스터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감각이 다른 이색적인 포스터들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진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포스터들은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까지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폴란드 작가들은 포스터 디자인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습니다. 예술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았고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포스터 디자인은 특히 영화 포스터에서 빛을 발휘했습니다. 기존의 직설적인 표현을 넘어서 함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서 포스터 예술의 창조성을 발휘했습니다. 그 시대 포스터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술가들로는 발데마르 시비에르지, 얀 레니차, 헨리크 토마스제비스키 등이 있습니다.

...............황부용은 당시에 작품 속의 비둘기 부분을 날개를 퍼득이는 비둘기를 촬영해 몽타주로 합성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만약에 날개를 퍼득이는 비둘기를 촬영해 합성했더라면 2등상까지는 올라가지 못 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심사위원들의 분위기가 회화적인 기법의 포스터들을 우대했다는 것을 심사결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황부용의 작품은 회화는 아니었지만 조각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비록 최종 결과물은 사진이었다고 해도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었습니다.

...............IAA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는 1948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제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때부터 IAA의 사무총장은 "예술가들이 유네스코의 목적에 봉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사와 예술가들의 예술 실천에 있어서의 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 질서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IAA의 사무총장은 또한 예술가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그들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임무로 부여받았습니다.

...............1951년 제6차 회의에서 유네스코 총회는 사무총장이 다양한 국가에서 예술가들의 자유에 대한 실제 상황을 연구하고 그들을 유네스코의 작품과 더 밀접하게 연관시킬 수 있는 수단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 예술가 회의를 조직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1952년 베네치아에서 열린 예술가 회의에서 19개국 23개국 정부와 48개 예술가 협회가 국제화가협회ㆍ국제조각가협회ㆍ국제판화가협회의 설립을 지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해 파리 유네스코회관에 사무국이 개설되었습니다.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Korean beauty 1984.

...............황부용이 디자인했던 1984년 신년 연하장이 그해 바른손카드가 출시했던 연하장들 중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자 라이벌 관계 있던 기업 삼성카드에서 1985년 용으로 3장의 연하장 디자인을 주문해왔습니다. 그러나 황부용이 제출했던 1985년용 3점의 삼성카드 디자인은 모두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황부용은 그 중의 한장을 포스터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포스터가 당시에 어떤 전시회에 출품되었는지는 그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의 추천작가 부문에 발표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Korean hero, President Park 1999.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군사정변 주도 및 1972년 유신헌법 선언 등을 통해 18년 5개월간 장기집권하다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 중 경제개발5개년계획 및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조국근대화 및 경제발전을 기록적으로 이룩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유신체제는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한 정치체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막강하게 보장해줌으로써 독재체제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체제 아래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습니다.

...............유신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주장이 야당과 재야세력에서 광범위하게 대두했으나, 박정희는 이를 '대통령긴급조치'로써 탄압했습니다. 유신체제 7년간 수많은 정치인과 종교인들 그리고 지식인과 학생들이 긴급조치에 걸려 투옥당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론도 한국의 강압정치를 비난했으나 박정희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독재적인 통치에 의해 박정희정부는 이 기간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연간 10%를 넘나드는 고도성장이었고 국민소득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국가안보면에서도 빈틈없는 태세를 구축한 것은 확실한 그의 업적이었습니다.

...............1999년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20주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다시 그의 업적과 독재에 대한 재평가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며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외환위기 극복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으며 사회복지제도 정비와 노사관계 안정 등의 공적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남북문제에 있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공동선언에 합의,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해외로부터 유입된 그래픽디자인 관련 전문서적 등을 통해 자주 보아왔던 쿠바의 게릴라 지도자 '체 게바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혁명가 '마오쩌둥' 등의 이미지처럼 정치적인 그래픽디자인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건설회사 건영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미라켈이라는 화학적 소재를 프로모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서울 서초구 잠원동 소재 건영 본사 사옥에 있는 미라켈갤러리에서 '박정희 대통령 희노애락전'이라는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민족영웅 모세와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Non 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VIDAK 1997.

...............황부용이 1997년 VIDAK 회원전에 출품했던 작품입니다. 1979년에 칼을 그린 이후 18년 만에 다시 칼을 그린 포스터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황부용은 대학 은사 중에서 김교만 교수로부터는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후원과 응원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조영제 교수와 양승춘 교수로부터는 수시로 견제를 당하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두 교수와 상생하던 시기는 황부용이 올림픽조직위와 CDR을 위해서 일했던 시기 뿐이었습니다. 두 교수는 황부용의 성장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나무 밑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 로뎅이 루마니아 어느 조각가의 실력을 보고 감탄해 자기 밑으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그 조각가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대가(大家) 밑에서 배우는 것이 한 분야에서 가장 빨리 자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 대가 밑에만 있으면 결국 그 사람의 길만 답습할 뿐 그 길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뉴튼이나 아인슈타인 밑에서 걸출한 물리학자들이 나오지 못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요?

...............통상 큰 나무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은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입니다. 탁월한 통찰력과 직관력, 쌓인 지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타고난 재능으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 사람 밑에서 사사 받으면 좋을 것 같지만 결국 누구누구의 제자 또는 누구누구의 후배 밖에 되지 못합니다. '제 2의 누구'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선을 긋게 되어 오히려 역효과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큰 나무 밑에서 평생 살려고 하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혼자 비바람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큰 나무 밑에 머물다 과감히 그 자리를 떠나 홀로 서야 합니다. 큰 나무 아래서는 매서운 비바람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충분한 햇빛이나 양분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 '리포메이션'은 당시 황부용의 독백이었습니다. 황부용은 조영제 교수가 대한민국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빅뱅'을 이루었던 분이었기에 젊은 날 한 때 그 대가(大家)의 그늘을 동경했던 자신을 깊이 후회하고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46세가 되었던 어느날 그 다지고 또 다져진 그 의지를 위해 이 포스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포스터는 스스로를 위한 독백이었습니다.





Official poster for the 1st Asian Jumping Championships Seoul 1985.

...............황부용이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1985년 치루어진 '아시아 승마선수권대회'라는 승마대회를 위한 행사 포스터입니다. 점핑하는 승마 자세를 하나의 엠블렘으로 만든 뒤 그것을 사방연속무늬처럼 만들어서 화려한 행사를 연상하게 했고 배경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사진을 배치함으로써 마치 승마대회가 치루어지는 운동장의 흙먼지가 날리는 것같은 시각적 효과를 연상시켰던 연출이었습니다. 당시 주최측으로부터 "승마인들이 오래오래 자신들의 방 벽에 걸어두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포스터"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Official poster for the Month of Information Culture 1988.

...............1988년 황부용은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의뢰로 정보문화의 달 엠블렘과 행사 런칭 포스터 등을디자인했습니다. 배경으로 채택한 컴퓨터그래픽은 당시 비슷한 연배로 자주 교류하던 일본 도카이대학교 교수 겐다 에쓰오 씨의 작품입니다. 2021년 현재 이 행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 의해 34년째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021년 6월 2일자 연합뉴스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회복과 도약, 디지털 뉴딜과 포용으로'를 주제로 6월 한 달간 제34회 정보문화의 달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정보문화의 달은 건전한 정보문화 확산을 위해 1988년부터 매년 6월에 열리고 있습니다. 기념행사와 정보문화 유공자 시상, 국민인식제고 캠페인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됩니다. 과기정통부는 2021년 정보문화의 달에는 키오스크 이용 불편에 관해 국민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고안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키오스크란 서류발급ㆍ상품주문ㆍ결제 등에 사용되는 무인 결제기를 말합니다. 2021년 6월 22일에는 서울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서 정보문화의 달 기념식을 열고 정보문화 유공자 시상식 등의 행사를 벌였습니다. 명사 초청 릴레이 특강과 디지털역량 강화 교육콘텐츠 기획 공모전 등도 열렸습니다. 당시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정보문화의 달을 계기로 디지털 포용 사회 제도기반 마련을 위한 '디지털포용법' 제정과 키오스크 등 정보접근성 개선을 위한 역할강화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2021년 6월]









Official poster for the Asian Games Seoul 1986.

...............제 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공식포스터 제1호가 제작, 배포되었다. 지난 6월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계획되어 실행에 들어간 이번 포스터는 서울오림픽조직위의 황부용 씨가 아트디렉션을, 시티스튜디오 김현웅 씨가 촬영을 맡아 제작했다. 조직위원회에서 제시한 컴셉트는 우선 서울아시아경기대회의 캐치프레이즈인 '영원한 전진'을 상징하고 그리고 그동안 나온 포스터들이 모두 추상적인 것이라서, 스포츠 행사를 시각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모티브로 마라톤을 선택한 것은 마라톤이 올림픽의 하일라이트로서 '영원한 전진'의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제작팀이 가장 고심한 것은 어떻게 올림픽의 이미지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고요한 한국의 이미지를 한 화면 속에 표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협의한 결과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서기가 서려있는 한국의 산세를 배경에 깔고 마라톤 주자들의 역주를 담기로 했다. 인공적인 조작보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을 모델로 기용했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수차례 현장 답사를 했다. 마침내 정면, 측면, 사각의 세 방향에서의 촬영으로 1차 시안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3박4일을 예정으로 촬영팀을 구성, 아트디렉터 1명, 포토그래퍼 1명, 어시스턴트 포토그래퍼 1명, 촬영보조 1명, 그리고 모델 3명이었다.

...............촬영일자가 금년들어 가장 무더웠던 여름이라 낮에는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카메라를 만지면 불에 단 프라이팬을 잡을 때처럼 후끈후끈했다. 충분한 휴식을 위해 낮에는 두시간씩 오침을 하고, 한국의 고요한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도록 일출과 동시에 촬영할 계획이었지만 광원이라든가 여러 문제가 있어 동이 트기 시작하는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역광을 이용해서 촬영했다. 현장감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어시스턴트 포토그래퍼는 창문에 매달리고 카메라맨은 봉고 차 위에 로프로 몸을 묶고 마라토너와 보폭을 맞추면서 4km 이상을 같이 뛰었다. 땀으로 목욕을 한 모델들, 달리는 차 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는 카메라 맨, 한증막 같은 8월의 폭염 속에서 모두들 기진맥진했다.

...............촬영기자재는 전문가들이 쓰는 300mm 렌즈의 아사히펜탁스 6"x7" 카메라를 사용했고, 마라토너를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을 흐리게 했다. 사용한 필름은 고감도, 저감도, 35mm 필름 등 세 종류로 찍었는데, 최종적으로 채택된 사진은 프로페셔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ASA 64 액타크롬으로 찍은 것이다.

...............400여 컷을 찍은 필름 중에서 선정된 3컷의 슬라이드로, 리스폰스-310 컴퓨터에 의한 모자이크 효과, 솔라리제이션 효과, 모래망점 효과로 처리했다. 그리고 완성된 사진에 서울아시아경기대회의 휘장과 로고를 레이아웃해 포스터를 완성했다. 글씨체는 지난 2월 휘장 고지 포스터에 사용했던 이제는 서울아시아경기대회의 공식 서체가 된 가느다란 아방가드 라이트를 사용해 휘장의 매스와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스포틱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3장의 포스터 원고가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회에 제출되어 모자이크 영상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모자이크 테크닉으로 처리한 포스터가 결정된 것은 최근의 TV 영상의 흐름과 관련해 시대적인 감각의 아이덴티티가 작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포스터의 영상은 동해안 하조대 근처의 국도에서 오전 9시 경 촬영한 것인데, 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를 디자인 한 김현 씨는 아스팔트의 델리케이트한 색감과 황색의 중앙선이 적절한 구도를 이루어 공간감이 넘치는 모던한 영상을 창조하고 있다고 평기했다. 세 사람의 마라토너는 '제일제당'의 한정우와 김홍식, 그리고 '조폐공사'의 이승구 선수이다.

...............[1984년 11월 월간디자인 이현기 기자]





Year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in Republic of Korea. 1987



Poster commemorating Republic of Korea's completion of phone automation nationwide. 1987



Poster for the Rememberance - Over the 10,000,000 telephone lines in Korea 1987.

...............전두환 대통령의 업적 중에는 인터넷 네트워크 망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체신부를 통해 전국에 기본망으로 PSDN을 깐 것입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참모들은 인터넷 네트워크 망을 설치할 때 동축케이블로 깔 것인지 광케이블로 깔 것인지를놓고 첨예한 대립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광케이블로 깔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 결정은 전두환 대통령 재임기에 광케이블이 국산화가 되는 것은 물론 광케이블 건설화 기반에 큰 기틀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 때 네트워크 망이 전국적으로 개설되고 퍼져나간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에는 만성적이고 고질화 된 전화 적체 문제를 완전 해소해 즉시 가설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숙제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한민국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0년대에 들어서서 연평균 100만 회선이라는 대량 공급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땅에 전화가 도입된 지 85년만에 그 꿈이 현실로 대한민국 국민 앞에 다가섰던 것입니다. 당시 전국 전화 1000만 회선 돌파는 또 하나 한국의 기적으로 온 세계에 과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0년말 280만 회선이었던 전화시설이 그후 7년만에 740만 회선으로 약 3배의 시설을 증설함으로써 1987년에는 전화 1000만 회선을 돌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계 10위의 전화 보유 국가로 부상했고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대하고 획기적인 사업들을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전기통신의 첨단기술 덕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전화의 선진화를 통해 닥쳐올 정보화 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전기 통신 시대의 장을 열기를 열망하며 이 포스터를 발행했습니다.





Poster for the Seoul Paper Show 1991 .

...............종이 전문 수입업체인 (주)두성산업이 주최하고 본사가 후원한 제1회 서울종이잔치가 안그라픽스의 기획, 시디(SIDI, 대표 전홍근)의 전시 디스플레이로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에서 지난 9월 말 그 막을 올렸다. 닷새 동안의 일정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해당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디자이너와 학생, 일반인들의 대대적인 호응 속에 종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관심을 모은 국내 최초의 종이 테마전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종이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외국의 희귀본들이 개인 소징자들의 협조로 일반인들에게 선보여졌고, 금누리 씨와 일본 종이조형 작가인 히로시 오가와(菊竹淸訓) 씨의 종이 조형물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금누리 씨의 종이 조각은 전시장을 가로지른 대형 조형물에 얇은 종이로 날개를 한껏 펼친 것 같은 형태를 오려붙이고, 바람을 이용해 계속 펄럭이게 함으로써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운동감을 부여했고, 오가와 씨는 한가지 형태의 종이 조형물을 색색의 종이로 제작해 질서정연하게 나열함으로써 그 자체로 한 덩어리의 커다란 조형물이 되도록 설치했다.

...............우리 고유의 종이인 한지도 이번 전시를 통해 다른 나라의 종이에 뒤지지 않는 그 독특한 멋으로 한 몫을 단단이 했는데, 특히 영남 스님이 손수 제작한 다양한 종류의 한지 전시와 함께 관람객들이 직접 한지를 떠서 가져갈 수 있게 한 손종이 제작 실습코너를 마련해 놓아, 이번 행사의 기념품으로 가져가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특히 단순 나열 식의 전시회에 그치지 않고 손종이 실연 코너를 마련하고, 여러가지 종이로 체작된 책자, 패키지, 카드 등을 함게 소개하는 등 전시기획 면에서 섬세함이 돋보인 전시였다. 또한 이런 기획 의도가 충분히 빛날 수 있도록 꾸며진 전시 디스플레이도 이번 전시를 돋보이게 하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1991년 11월호 월간디자인 이우경 기자]







Poster for the hosting telecommunications Seoul 1988 Olympics .

...............1988년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는 황부용에게 자신들이 전 세계 올림픽 패밀리를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서울올림픽 소식을 전 세계로 중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하는 포스터 2점을 의뢰했습니다. 참으로 그래픽디자이너로서 해석하기 난감한 소재였으며 비주얼로 표현하기 까다로운 요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황부용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비주얼 임팩트를 추출하지는 못 했으나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일체의 수정보완 절차도 없이 단 한 번의 프레젠테이션 만에 채택되었습니다.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Korean beauty 1985.

...............1985년 4월 25일부터 4월 30일까지 서울 동방플라자미술관에서 '한국의 재발견'이라는 테마로 '그래피코리아 85' 동인전이 열렸습니다. 참여한 작가들은 구동조ㆍ김상락ㆍ김현ㆍ나재오ㆍ방재기ㆍ이봉섭ㆍ정연종ㆍ전갑배ㆍ조종현ㆍ황부용으로 모두 10인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그래픽디자인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인물들로 연배는 모두 30대 후반이었습니다. 저는 조선시대 후기의 풍속화에 등장했던 여인들을 기하학적으로 다듬어서 그래픽화 해 캐릭터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다수의 평판은 "김교만 교수의 작품세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김교만 교수님은 에이엠 카상드르ㆍ장 까를뤼ㆍ레이몬드 샤비냑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 영향을 전적으로 한국의 전통 풍속과 민속 소재들을 그래픽화 하는 데에만 주로 사용하셨고 열정을 쏟았습니다. 교수님은 일본의 그래픽디자이너들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으시려고 의식적으로 애썼습니다. 당시 한국 그래픽디자인계의 파이어니어들은 대게 일본 디자인계의 영향을 주로 받는 상황이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이질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김교만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영향이라면 겸손과 열정입니다.

...............천재와 영웅도 가까이에서 보면 결점투성이라고 하는데 김교만 교수님은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교수라기보다는 대학원생 같았습니다. 전형적인 모범생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태생부터 타고난 겸손 체질이라고나 할까요. 익은 곡식이 고개를 숙이며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릅니다. 어깨나 눈에 힘을 준다거나 대화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등 고압적인 자세를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 인생의 한 시기에 김교만 교수와 같은 훌륭한 분을 은사로 모셨고 또 그 분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

...............김교만 교수님은 대학의 학과 내에서도 후배 교수인 조영제 교수가 그래픽디자인계의 대부로 행세하면서 헤게모니를 내세우고 전횡하는 바람에 선배 교수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못 받으시고 아주 불편한 교수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하셨으며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교수님은 제가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 일을 끝내고 대학으로 복귀하지 못 한 것에 대해서 무척 안타까워 하시고 저를 만날 때 마다 분노하셨습니다. 되돌아보면 그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습니다. 저는 그만 예기치 못했던 인생의 덫에 걸려버렸던 것입니다.





Non-commissioned poster for Adidas Korea, Inc., 1985.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5.



...............이 '아디다스'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 포스터는 포토샵 기능을 적용해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디자인 한 초현실주의 몽환적 레이아웃 기법을 보여줍니다. 황부용은 1971년부터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첫 해는 입선에 그쳤고, 1972년 특선, 1973년 특선, 1974년 한국무역협회장상 수상으로 1975년부터는 추천작가가 되어 추천작가 부문에 출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0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출품해 1985년부터는 초대작가 부문으로 출품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1988년 당시 초대작가 부문에 출품했던 작품입니다.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는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로 네이밍이 바뀌었고 추천작가는 추천디자이너로 초대작가는 초대디자이너로 그 호칭도 바뀐 뒤였습니다.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6.







Non-commissioned poster for Nike Korea, Inc., 1987.

...............이 '나이키'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 포스터는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공식포스터 촬영에서 얻은 사진들을 부분적으로 트리밍해서 완성한 것입니다. 황부용은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의 초대작가 부분에서도 해를 거르지 않고 10년간 열심히 출품했으나 1995년을 기해 그 출품을 종료하고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와 작별하기로 결심합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였으며 지나간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황부용이 1988년 9월 개업해 1993년 10월 5년 만에 문을 닫았던 디자인연구소 디자인브리지 운영 시기의 종료와도 거의 일치합니다. 황부용은 심기일전해 1995년 8월 중앙일보사 편집국 부장 대우 신문디자인 전문위원으로 투신해 대한민국 신문디자인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The 4th National Exhibition Korean Architecture 1985.

...............1985년 '대한민국건축대전'의 포스터를 의뢰 받고나서 황부용은 불현듯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떠올랐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이집트에 위치한 정사각뿔의 모양을 가진 고대 석공들의 건축물입니다. 2008년 기준으로 138기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습니다. 대다수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건축 기술의 개량과 발전이 바탕이 된 것이며 단시간에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2022년 10월 대한민국은 전 세계 6위의 국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미국의 시사 전문지 US NEWS 는 글로벌 마케팅 기업 VMLY&R의 계열사 BAV그룹,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와튼스쿨과 공동 조사한 "2022년 전 세계 최고의 국가" 순위를 통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황부용이 이 포스터를 만든 지도 벌써 37년.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세워진 각종 건축물의 디자인과 시공능력 수준도 대한민국이 세계 6위의 국력을 자랑할 만한 선진국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Sewon Genius - A promotion poster for the computer hardware 1990.

...............이 포스터는 황부용이 1988년 9월 개업했던 디자인연구소 디자인브리지 운영 초기에 세원전자라는 신생 기업에서 의뢰한 '제니우스' 제품 이미지 마케팅용 포스터 디자인으로 아인슈타인 이미지를 오마주 기법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감사ㆍ경의ㆍ존경"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마주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업적이나 재능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영화예술 분야에서는 특정 감독의 스타일이나 분위기를 따라 하거나, 원작 영화 속의 장면을 그대로 삽입하는 등의 방법을 적용합니다.

...............기존 영화를 모방한다는 점에서는 패러디와 유사하기도 하지만, 과장이나 풍자 등 익살스럽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경의ㆍ존경"의 뜻을 가지고 있는 오마주와는 반대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세원전자는 신생 기업이었기에 황부용은 오마주 기법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세원전자 쪽에서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브랜드는 이미지를 실현하는 것이므로 그 구축을 위해서는 역사ㆍ문화ㆍ예술 등의 동기부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원전자는 기업으로서 그 수명이 단기간에 거치고 말았습니다.









Three posters for the Harmony & Trust for IBM Korea, Inc. 1990.

............... 업무관행에 있어서 한국아이비엠 같은 외국기업과 국내기업과의 차이를 들라면 업무한계와 이에 따른 책임소재가 명확하다는 데 있습니다. 담당부터 최종결재권자까지 보통 5단계 이상의 결재과정을 거치는 동안 책임소재가 모호해지는 국내기업과 달리 외국기업들은 담당자에서 결재권자까지 보통 3단계를 넘지 않습니다. 책임소재가 명확해지다 보니 업무에 대한 성과가 확연히 들어나게 되고 인사평점을 메길 때에 객관적인 자료로 이용됩니다.

...............해당업무에 대한 담당자의 책임감과 자율권도 높아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원간의 업무분담은 "너의 일은 너의 일, 나의 일은 나의 일"이라는 관념이 깊어져 사내에 개인주의적인 풍토를 가져오고 이것이 직장생활의 어려움이 됩니다. 1990년 한국아이비엠의 의뢰로 황부용은 신뢰와 화합 시리즈 포스터 3점을 디자인했습니다. 임직원들의 반응이 좋아 속편 3점도 추가로 디자인했습니다. 위의 3점은 초판입니다. 아래 3점은 속편입니다. 당시 한국아이비엠 담당자는 김억 씨였습니다.







Three posters for the Harmony & Trust for IBM Korea, Inc. 1990





Poster of the National Saemaul Leaders' Conference. 1990





Poster of The 5th ANOC General assembly and IOC meetings. 1986





Poster for recruiting Olympic volunteers.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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