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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 for CONTEMPORARY ART CURATOR magazine. 2021. CAC is an online contemporary art magazine,
it covers visual art, photography, street art, art events and art films.

...............대한민국 황부용 화가가 영국 런던 소재 온라인 잡지사 컨템포러리 아트 큐레이터(CONTEMPORARY ART CURATOR)의 CI 디자인을 재능기부 했다. 작년 10월 CAC가 먼저 황부용 작가에게 단행본 출판 참여를 요청하면서 함께한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평소 CAC가 SNS에 새로운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컨템포러리 아트 큐레이터(CONTEMPORARY ART CURATOR) 회사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축약형 마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안한 디자인을 회사가 받아들여 사용을 하고 있다.

...............황부용 작가와 CAC 인연은 작년에 시작 되었다. 2020년 10월 2일 영국 런던에 있는 온라인 잡지사 CAC는 황부용 작가에게 세 번째 단행본 출판에 함께 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안을 했다. CAC는 2014년에 설립되어 2021년 현재 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월간 홈페이지 접속자 숫자는 80만명, 인스타그램은 42만5000명, 페이스북에 2만3000명 정도의 팔로워가 있다. 그리고 '100 ARTISTS OF THE FUTURE' 'COLLECTOR BOOK: NEW PERSPECTIVES' 2권의 단행본을 출판한 실적이 있는 회사다.

...............이런 인연으로 황부용 작가는 CAC의 모바일 채널을 자주 접하다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발견하고 CI 디자인을 개발해 주게 되었으며, 회사는 기꺼이 받아 들이고 사용하게 되었다. 황부용 화가는 2009년 그래픽디자인계에서의 33년 활동을 마감하고 전업화가 생활을 시작해 해마다 개인전과 그룹전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편집국 신문디자인 전문위원,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을 역임했고, 명지전문대학 전임강사 및 조교수를 지낸 바 있다.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IAA 주최 국제포스터살롱에서 2등상 수상, 1979년 중앙일보사 발행 계간 미술 12호에 대한민국 10대 그래픽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2021년 4월 1일자 브랜드타임즈 신동호 기자]














Emblem & basic identity system design for the
Institute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Studies.


...............'연개소문' 등 역사 드라마가 국민의 기마민족 본능을 일깨우는 가운데 태양의 새 '삼족오'가 이제 사람들에게 무척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다. 민족정신의 상징이란 삼족오 가치를 알아보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정신문화상품으로 재탄생시킨 이가 있다. 바로 국학원 삼족오 로고를 디자인한 그래픽디자이너 황부용 씨. 그에게서 삼족오 로고와 뿌리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와 대뜸 선생님 만이 하실 일이라며 국학원 로고를 부탁했습니다.

...............무척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그 열정에 반했습니다" 고 하며 삼족오와의 대면이 열정에 대한 응답이라 밝혔다. 그는 이어 "상업목적이 아닌 우리민족의 정신가치를 세우고자 하는 순수함에 나도 최고의 작품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죠" 라며 삼족오 로고가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 밝혔다. 그래서인가 삼족오 로고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세계의 찬사를 받을 만한 경쟁력을 가졌다는 평이다.

...............과거 한국이 양적 성장과정에서 모방에 열중했던 '반사의 시대'에 있었다면 오늘날은 모든 분야 개개인이 아름다움과 질적 가치를 찾아 고민하는 '발광의 시대'라고 황부용 씨는 지적했다. "우리는 4대 강국에 둘러싸여 땅이 좁고 자원도 부족합니다. 우리가 생존 번영 하려면 발광시대에 맞게 창조성을 발휘할 인재를 가르쳐야 되요. 예전엔 베끼기만 해도 인정받았지만 더 이상 짝퉁과 아류가 용납이 안 돼요" 그는 해외에서의 출장길에 빈 공간에 흰 백지만 두고 창작을 하는 현지 아티스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주변에 다른 무엇인가 있으면 베끼게 된다는 이유다.

...............자료를 잔뜩 쌓아두고 거창하게 작업하는 당시 국내분위기에서는 틀을 깨는 것이었다. "자기 뇌 속에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수용할 것은 수용해 창조할 기반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뿌리를 아는 것이에요" 황부용 씨는 삶의 원천이 되었던 토종문화와 정신이 자기 작품의 뿌리임을 힘주어 말했다. "뿌리가 없으면 외래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창조성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최근 확산되는 국학 무브먼트에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2006년 12월 16일자 국학뉴스 송영주 기자]

...............●참고: 2008년 3월 30일 국학원은 삼족오 디자이너 황부용을 국학활동 '명예의전당'에 올렸습니다. 국학원 국학활동 '명예의전당'은 홍익인간 정신을 삶 속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실천해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분들을 선정해 올린다는 취지로 개설한 것입니다.







Logo for Jungwoo Co., Ltd. 1985. Business is about natural rubber and latex,
synthetic rubber and latex, rubber chemical, latex chemical and dispersion.

...............경영학에서는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의 수행을 위해 기업가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나 정신을 기업가정신이라고 합니다. 기업가정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든 기업가가 갖추어야 할 본질적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기업은 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먼저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동시에 기업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가는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잃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유일한 죽마고우라고 할 수 있는 윤철원 군이 설립한 정우무역주식회사는 1985년에 창립했으니 어언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부산 범일동 예식장 건물 5층에서 직원 4명과 함께 시작한 사업은 일취월장의 세월을 보내며 생고무와 합성고무, 고무배합약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국내 제일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1986년 말레이시아에서 천연라텍스를 벌크 형태로 개발해 수입하기 시작해 국내 관련 기업들의 원가절감에 기여하기 시작한 것이 사업 성공의 요인이었습니다. 이후 베트남으로부터의 천연고무 수입과 라텍스 개발 등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왔습니다.

...............저에게 정우무역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1988년 개업 3년 만에 받은 동부산세무서장 표창입니다. 그리고 1997년 사업 시작한 지 12년 만에 받은 부산지방 국세청장 표창과 2000년 사업 시작한 지 15년 만에 수상한 오백만 불 수출의 탑, 2004년 사업 시작한 지 19년만에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모범성실납세자 지정, 그리고 2005년 사업 시작한 지 20년만에 받은 산업포장 수상 등 입니다. 지난 70년간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업가들을 만나보았지만 대다수 기업인들은 어떻게 하면 세금을 좀 덜 낼 수 있을까 궁리했으며 또 그것을 자랑했고 술자리의 안주로 삼기도 했습니다.

...............윤 사장은 창립 후 10여년 정도 지나 본격적으로 부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으로부터 사업을 확장하라는 많은 유혹에 시달렸지만 초지일관 생고무와 합성고무, 고무배합약품 수입과 수출 하나에만 매진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윤 사장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최고경영자가 잘 모르는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 윤 사장은 연세대 생화학과 출신이지만 기업을 경영하면서 회계 분야를 독학해 박사급 전문지식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2020년 7월 황부용]






Logo for Jejuilbo, a newspaper company. 1996

...............제주일보는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발행되는 신문입니다. 1945년에 제주신보로서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1962년에 제주신문과 제민일보를 통합해서 제주일보가 되었습니다. 1996년에 당시 발행인이었던 김대성 사장이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에게 제호 디자인을 부탁했습니다. 홍석현 사장은 금창태 전무를 경유해 황부용 신문디자인 전문위원에게 제호 디자인을 의뢰했습니다. 김대성 사장은 황 전문위원에게 디자인료로 금 일봉을 보냈습니다. 한자 제호의 제주신문에서 한글 제호의 제주신문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제주일보에서는 황부용 신문디자인 전문위원을 제주도로 초청해 2박3일간 특급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물도록 하면서 극진하고 융숭한 대접으로 감사함을 표시했습니다.






Logo for SUHYUP, Korean Fisheries Cooperatives. 1995

...............저는 디자이너로서 활동한 지난 40여 년 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창작물들을 쏟아냈지만 단 한 번도 모방이나 표절 사건에 휘말려서 곤욕을 치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약간 찜찜해서 발표하고도 노심초사한 적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 사용했던 픽토그램을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에 다시 사용하지 못한 문제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만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또 하나는 1995년에 발표했던 수산업협동조합의 CI 심벌마크 디자인이었습니다.

...............2012년 수협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CI가 등장해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지만 17년간 많은 어민들과 수산업 종사자들의 사랑을 받은 디자인입니다. 지금도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을 해 보면 제가 디자인한 것과 유사한 형태로 물고기들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작품들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흔하다고 해서 나쁜 디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나 노래 가사에 항상 등장하는 사랑과 이별과 고독과 슬픔의 테마는 너무나도 흔해서 천해보이기까지 하지만 언제라도 변함없이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명언입니다. 1907년 여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1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26세의 젊은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아비뇽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회화의 역사에 일대혁명을 일으킨 큐비즘 탄생의 순간이었습니다. 피카소의 회화작품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파악한 대상의 본질을 그림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카소는 소크라테스나 니체와 같은 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철학이란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속에서 다시 파악하고 본질이라는 이름의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위대한 피카소의 큐비즘도 형식적으로는 각종 미신과 주술적 상징으로 가득 차서 종횡무진 자유분방했던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네델란드가 낳은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밀레의 작품을 카피하면서 10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서양미술사 뒤흔들 정도의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고흐는 초기에 밀레의 '첫걸음' '씨뿌리는 남자' '낮잠' 등 수많은 그림을 모방했습니다. 고흐는 37세로 불행했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약 10여 년간 900여점의 페인팅, 1100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약 2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은 대게 생애 마지막 2년 동안에 그려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만 있다면 그 실수와 실패는 잊히고 말 것입니다.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희곡 작품 중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습니다. 현대 디자인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자주 목격됩니다. 요즈음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플의 디자인이지만 초기의 제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독일 브라운 사를 위해서 일했던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많이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카피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는 디터 람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 하고 디터 람스는 오히려 애플의 조나단 아이브가 자신이 결코 해내지 못했던 완성도 높은 결과를 이루어내고야 말았다고 칭찬합니다. 2018년 현재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100조원에 달해, 전 세계 기업 가운데 4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자제품들을 분해해서 역으로 설계하고 디자인도 표절에 가까운 모방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2018년 9월 황부용]






Logo for IPECK, International Private Economic Council of Korea

...............국제민간경제협의회 (國際民間經濟協議會: International Private Economic Council of Korea)는1980년대 말, 사회주의 국가와의 경제교류를 위한 교섭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민간기구이다.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IPECK'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북방국가, 즉 공산권 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민간차원에서 관리하고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1988년 10월 출범한 민간경제기구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와 대기업 회장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정부보조금ㆍ무역특계자금ㆍ회비 등으로 운영되었다.

...............창립 당시에는 소련이나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 전망이 불투명한 데다 정부가 이들 국가들과의 정치적 관계로 인해 전면에 나서 북방정책을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업계 주축의 민간기구를 내세워 국가적 차원의 대북방 경제교류의 교섭창구 역할을 대신 수행하게 하고, 정부는 뒤에서 기본정책 수립ㆍ조정ㆍ후원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 이유로 국제민간경제협의회는 표면적으로는 민간기구이지만 사실상 정부산하기구라 할 수 있다.

...............국제민간경제협의회의 주요 업무는 북방국가에 대한 기업의 투자진출을 위한 사전승인업무와 업체간 자율조정ㆍ상호협의 그리고 정부지원의 주선, 경제사절단의 파견 및 접수, 비자발급 등 출입국 관련 행정지원과 방문인사에 대한 보안교육, 공산권 유력인사 초청 등 인적교류 주선, 투자상담 자문, 북방지역에 대한 기초연구와 정보 서비스 등이었다.

...............국제민간경제협의회는 소련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불가리아 등과 민간경협을 체결하고, 20여 차례의 공식·비공식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1989년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체제가 잇따라 붕괴되는 등 상황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이들 국가와의 수교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등 제반 여건이 크게 달라짐에 따라 민간기업의 북방진출에 따른 과당경쟁을 막고 경협창구를 일원화해야할 필요성에 의해 설치된 이 기구의 기능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1990년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 경제교류증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한 데다 유관 경제단체들과 업무가 겹쳐 마찰이 잦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1991년에 이르러서는 당국의 기구축소와 기능전환 방침에 따라 등 북방교역지원 역할을 관계당국과 여타 경제단체에게 이관하며 기능이 대폭 줄어들었고, 대신 북방국가에 대한 조사ㆍ정보수집ㆍ연구 업무(북방국가의 개혁정책ㆍ제도ㆍ법규 등의 조사, 지역별ㆍ업종별 경제현황 및 투자환경 조사, 외국인 투자제도 안내, 향후 경협방향에 대한 연구, 유망 경협분야 및 지역 선정과 대상기업 발굴, 한국기업 전용공단 설치 등을 위한 타당성 조사 등) 기능을 갖는 정부의 재정보조 연구기관으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결국 1992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으로 흡수되며 해체되었다. 비록 기구는 단명으로 사라져버렸지만 로고는 명작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그 시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Brand identity system design for the LE CAF brand. 1991.

...............신발ㆍ의류ㆍ가방 등 각종 스포츠 용품을 생산ㆍ판매해 온 (주)화승 (대표 김재원)은 1990년 12월 르까프 (LE CAF) BI 작업을 완료하고 실행 단계에 돌입했다. 디자인브리지 (대표 황부용) 가 1990년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는 브랜드ㆍ색상ㆍ패턴ㆍ사인ㆍ포장ㆍ차량 등의 리디자인과 매장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로 이루어졌다. 1980년 12월 설립된 화승은 미국 나이키 인터내셔널 사와 나이키 브랜드의 로열티 지불 계약을 맺고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국내에 나이키 브랜드의 스포츠용품을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그리고 국내 신발업계에 한차례의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었다.

...............그러나 1984년 로열티 인상 문제로 나이키 브랜드의 사용을 포기한 화승은 1985년 자체 개발한 브랜드 '르까프'로 국내 스포츠용품 업계에 또 한 차례의 파문을 일으키고자 했다. 하지만 소득증대와 수입개방으로 인해 엘레세ㆍ리복ㆍLA 기어 등 외국의 유명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하게 되면서 (주)화승의 정상 도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즉 르까프는 전국 300여개의 매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시장점유율은 확보했으나, 소비자들은 해외의 유명 브랜드를 선호했고, 특히 서울에서 르까프의 시장점유율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승은 1989년 소비자 구매행동을 조사한 결과 르까프는 "오르 패션의 평범한 이미지를 갖는 브랜드"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는 1986년 르까프로 출발할 당시 회사의 예산문제로 일관성 있는 BI 작업을 실시하지 못 했고, 기존의 나이키 매장에 컬러 만 변화시켜 소극적인 작업을 실시하는 등 구매 시점의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던 나이키의 이미지를 르까프로 이어주지 못 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화승은 리조트 사업 등 경영 다각화를 계획하면서 르까프의 이미지 제고와 함께 시장점유율을 상승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BI 작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디자인브리지의 BI 작업 팀이 기존 브랜드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쟁업체인 (주)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는 한국 고유의 브랜드임을 강조하며 1986년 아시안게임 공식신발공급업체로 지정된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오면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나 르까프는 3위에 머물렀다. 둘째, 르까프라는 브랜드 네이밍은 좋았으나, 부산 모 여대의 교수가 디자인 한 기존의 브랜드 디자인은 이미지가 거칠고, 오렌지ㆍ화이트ㆍ디프블루 등의 복잡한 컬러 구성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 했다. 셋째, 기존의 브랜드 디자인은 일본의 철강회사인 아이치 (AICHI) 사의 로고와 시스템이 유사하다.

...............상기 분석 결과 다음과 같은 디자인 콘셉트를 설정, 디자인을 진행했다. 첫째, 브랜드는 이전의 날카롭고 하드한 이미지에서 둥근 이미지로, 심미성과 함께 세련미ㆍ조형미를 가시화 한다. 둘째, 브랜드 디자인은 앞으로의 추세인 상품의 코드화로 매체에 적용이 용이하게 하며, 이로써 커뮤니케이션의 효율화와 브랜드의 인지율을 높인다. 셋째, 컬러는 프렌치 블루 (FRENCH BLUE) 와 화이트만을 사용, 지적인 이미지를 소구하며 지성 고객층을 확보한다. 넷째, 르까프 패턴인 '르까프 애로우 (ARROW) 를 다양하게 개발해 독특하고 차별화 된 인상을 전개한다. 이로써 광고효과를 극대화 한다. 다섯째, 분위기에 맞게 각종 사인과 상품의 레이블을 개발한다.

...............화승 르까프 디자인실의 디자이너와 함께 진행한 인테리어 및 디스플레이는 새로운 이미지 창출 보다는 유니트화를 통한 매장의 정리에 역점을 두었다. 첫째, 차분하고 정리된 이미지로 타 브랜드 매장과 차별화 시킨다. 둘째, 스포츠 이미지와 함께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셋째, 남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브랜드와는 달리 매장 인테리어는 유연성과 부드러움으로 여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넷째, 재료는 스틸 위주로 규격화ㆍ스탠드화ㆍ모듈화 시킨다.

...............이상의 BI 작업은 새로운 마케팅을 적용한 리노베이션 성격을 가지며, 특히 인테리어 디스플레이에 역점을 두어 매장에서 소비자들의 구매시점 이미지가 르까프의 이미지에 까지 연결되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BI 작업은 다소 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매뉴얼화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BI 작업과 함께 1991년을 "새로운 르까프 도약의 해"로 정한 화승의 기대를 이번 프로젝트가 얼마만큼 만족시켜 줄 것인지는 올 한 해 동안의 르까프 매출액의 신장으로 가시화 될 것이다. [월간디자인 1991년 3월호 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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