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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rs for marketing the corporate image of a sound equipment company "KOREANA"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1.

..............."MELODIES TO SKY" "BIRD'S VOICE" 위 두 작품은 고급 오디오 제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KOREANA" 라는 회사를 가상으로 설정해 만든 브랜드 이미지 프로모션을 위한 논코밋션드 포스터입니다. 1971년 제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상업미술 전공 3학년 학생이었을 때 제6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야심작이었습니다.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는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의 미술전으로 1966년 창립되었습니다. 최고상을 목표로 절취부심 와신상담하며 만든 저의 데뷔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심사결과는 참담하게도 최고상은 커녕 특선의 반열에도 들지 못했고 입선에 그쳤던 것이었습니다. 심사위원 중 상업사진가 한 분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해 함께 했던 심사위원들이 그만 위축되어버리고 말았다는 후문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 그 어디에도 저의 이 포스터 작품과 비슷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맹자의 고자편 15장에는 "하늘이 장차 한 인물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그 몸을 지치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며 그 생활을 궁핍하게 해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틀어지게 만든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인내심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어떠한 사명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고생의 과정 그러니까 기나긴 장애물 경기를 거친 후에라야만 비로소 인물 다운 인물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유럽에서도 유명한 한 음악대학의 저명한 교수님이 아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한 제자가 모든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학교를 떠나려 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제 자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인생의 혹독한 고난과 시련뿐이네. 그 것이 자네를 최고로 만들어 줄 것이야."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을 요약하면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자 41장에 기록된 말입니다.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해 도(道)를 설명했는데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 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 또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 왜냐하면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고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쉽게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자성어입니다.

...............이와 같은 고전의 기록들은 풍상을 많이 겪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되돌아 보면 제 인생에도 풍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소년 시절에 자주 들었던 외할머니의 제 운명에 대한 예언을 상기했습니다. 제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풍파를 겪게 될 것이고 그 풍파를 다 뛰어넘어야 한다는 예언이었습니다. 벌이는 일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그러한 예언을 반복누적해서 들을 수 없었다면 저는 일찍 좌절하고 낙망해서 건강을 잃고 사라진 제 주변의 여러 인물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2006년에 방영된 일본 NHK의 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에는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명대사가 등장합니다. 공명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용맹스럽게 싸웠던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전투와 전투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다 보니 공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명예욕과 자존심이 종종 한 인간을 기가 막힐 파멸의 수렁과 웅덩이로 빠져들게 합니다. 70년이라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 주변에도 어김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몇몇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자살 이유는 바로 명예의 추락과 자존심의 붕괴였습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 속에는 전쟁을 치르다보면 때로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 자존심을 버리고 울분을 참으며 허리를 굽혀 적장의 구두끈을 매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역술가들은 사람의 운명은 타고나지만 운은 움직인다고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행운으로 만들고 불운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선택. 스스로 운을 갉아먹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는 사람들과의 지나친 경쟁의식과 체면심리 때문이며 경쟁과 체면을 의식하는 순간 불안의 싹이 자라고, 불안은 부정적 에너지로 변하며 바로 그 때 불운이 닥쳐온다는 것입니다.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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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rs for image marketing of men's fashion brand 'LION'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2.

...............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거리가 못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그것은 뉴스거리가 된다." 언론인 지망생들이 대학의 수업시간에 "뉴스란 무엇인가"를 배울 때 교수에게 처음 듣게 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SUN'의 편집장이었던 찰스 데이나가 한 말이라는데, 뉴스가 되려면 사람의 관심을 끌거나 충격적 사건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과 같은 일상적 일은 뉴스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포스터는 1971년 야심차게 내놓았던 데뷔작이 입선에 그치자 황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만 심기일전해서 1972년 다시 도전해 특선했던 작품입니다.

...............이 포스터에는 사람의 목이 없고 손만 있습니다. "LION"이라는 가상으로 설정한 남성 패션 브랜드의 이미지 마케팅 포스터입니다. 사람의 목과 손을 제거함으로써 개가 사람을 무는 것 같은 충격 속으로 보는 이들을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몽환적인 봄날의 꽃 속의 꽃 내부 공간으로 인도합니다. 패션 브랜드는 단순히 디자인ㆍ품질ㆍ가격이 기계적으로 결합한 상품이 아닙니다. 모든 브랜드는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낮은 가격과 높은 품질로 고객에게 기능적 가치를 어필합니다.

...............어떤 브랜드는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감정적 가치를 자극하고, 어떤 브랜드는 신선함을 주며 호기심을 유발하는 진귀적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브랜드는 고객에게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설득하며 상황적 가치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자녀들 학부모 모임에 가려면 이 정도 가방은 들어야 한다며 사회적 가치를 당당히 내세우는 브랜드들도 있습니다.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가치를 꼼꼼히 판단하고 신중히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렇지만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브랜드의 가치를 매번 따져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라'에서 가격을 고민하지 않고, '유니클로'의 품질을 걱정하지 않으며 '샤넬'의 디자인이 정말로 뛰어난지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라'에는 트렌디하지만 싼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고, '유니클로'는 누구보다 뛰어난 품질을 갖고 있으며, '샤넬'은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브랜드에는 고유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브랜드 가치와 동일시합니다. 브랜드는 이미지가 전부인 것입니다. "IMAGE MARKETING ADDING VALUE TO VALUE"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지 마케팅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원래가치를 증폭시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이 포스터는 당시 상공미전에서 유니크한 포스터로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픽디자인계의 전설이 된 홍익대학교 권명광 교수도 이 시기부터 황부용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A poster for image marketing of belt fashion brand 'WEMBLY'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3.

...............광고 속에서 보는 사람의 눈을 끄는 포인트가 되는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 따위를 "EYE-CATCHER"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1920년대에 처음으로 서구사회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 "눈길을 끄는 것" "눈에 띄는 것" "보기 좋은 것" 등으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이 포스터 작품은 육군에 복무 중이었던 1973년에 상공미전에 출품해서 특선을 한 작품입니다.

...............1971년 야심차게 내놓았던 데뷔작이 입선에 그치자 황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만 심기일전해서 1972년 다시 도전해 특선을 했고 1973년이었던 그 다음해 출품해 다시 특선했던 작품입니다. 그 해 1월 초에 육군에 입대했기에 입대 전에 미리 완성해 군복무 기간 중에 출품했었던 것입니다. "웸블리"라는 가상의 벨트 제품을 선전하는 포스터인데 볼드하고 다이내믹한 추상조형을 내세워 아이캐칭을 시도한 것입니다.

...............시청자의 눈길을 짧은 시간 만에 사로잡아 흥미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다양한 방법이 동원됩니다. 특히 광고에서는 사용되는 소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3B는 웬만해서는 실패할 일 없다는 3가지 광고 소재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BEASTㆍBEAUTYㆍBABY 를 말합니다. 이 3B는 "광고 불변의 법칙"의 저자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사람들에게 가장 흥미를 느끼는 사진이 무엇인지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처음 등장한 마케팅 이론 중 하나 입니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은 감동적인 아기 및 동물사진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소재에 가장 많은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물론 이 3B가 무조건적인 흥행 보증수표라고 할 순 없겠지만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동물ㆍ미인ㆍ아기를 광고의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일차적인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좋은 소재이긴 합니다. 딱히 광고 소재로 활용 할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 때 3B 중 하나를 사용하면 일단 중간은 갈 수 있습니다.

...............이 포스터는 3B 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추상조형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눈길을 끌고 눈에 띄고 보기 좋은 것을 추구해 본 작품이었습니다.





An Image marketing poster for shoe brand 'LEOPARD'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4.

...............이 작품은 황부용의 4번째 산업디자인전 출품작으로 황부용은 이 작품 출품으로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의 추천작가가 되었습니다. 1971년 입선. 1972년 특선. 1973년 특선. 1974년 한국무역협회회장상 수상으로 추천작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문교부에서는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의 추천작가를 석사학위 취득자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했기에 1977년 3월 서울 서소문구 소재의 명지실업전문대학교 도안과의 전임강사로 임용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군복무시절에 구상한 작품이었으며 휴가시기를 조정해 휴가를 나와서 완성했던 것입니다. 1973년 특선작은 군 입대 이전에 미리 완성해서 친구들 중 한명에게 출품을 부탁하고 간 작품이었습니다. 이후 1975년에도 군복무를 하면서 작품을 구상해서 휴가시기를 조정해 휴가를 나와서 완성해 추천작가 부분에 출품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75년부터 1984년까지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작품을 출품해 1985년부터 초대작가로 산업디자인전 초대작가 부분에 출품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994년까지 역시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10년간 출품한 후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고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 출품을 중단했습니다.





A poster for a performance.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7.

...............제 아내는 지난 45년간 제가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정도로 다른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해 왔다고 말합니다. 제 아내에 대한 저의 평가는 지난 45년간 변함없이 99점입니다. 처녀시절에도 아름다웠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순수하고 또 희생적입니다. 성경에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라는 문장이 기록되어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축복받기를 강조합니다. 제 아내는 저에게 과분한 축복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결혼 직전 시기까지 제가 좋아했던 처녀들은 많았지만 모두 저에게 남편감으로서의 불합격 채점표를 던졌던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우울했던 시절의 악몽들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저에게 부여했던 시련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되돌아보니 1977년은 저의 인생길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해 이었습니다. 대학원 석사학위도 없이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 자격만으로 3월에 26세의 나이로 서소문에 있던 명지실업전문대학의 전임강사가 되었고 7월에는 을지로 6가에 있던 국립의료원에서 아내가 될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이 포스터 작품은 그 당시 저의 심리상태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논코밋션드 포스터로 "파라솔 쇼우"라는 타이틀로 KBS가 국립극장에서 벌이는 가상의 공연 포스터입니다. 1977년 상공미전의 추천작가로서 출품한 것이었는데 많은 디자인계 선후배들과 관람객들로부터 그 해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스터 작품이었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상공미전에 추천작가와 초대작가 자격으로서 20년간 출품했던 포스터 작품들 중에는 졸작들도 많았습니다.

...............상공미전은 해를 거듭하면서 산업디자인전으로 그 타이틀이 바뀌었습니다. 추천작가와 초대작가도 추천디자이너와 초대디자이너로 네이밍이 바뀌었습니다. 추천작가 된 이후 20년간에 걸친 저의 논코밋숀드 포스터 실험은 종종 수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무언가 컨셉추얼한 것을 추구했고 매년 다른 아이디어로 접근했지만 그 결과들은 만족스럽지 못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어둡고 우울한 색조의 작품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선후배들로 부터 "황부용의 출품작들은 기복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1994년 24년째 출품을 끝으로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의 출품을 마감해 버렸습니다. 이유는 매년 신선한 작품을 출품해야만 한다는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고 산업디자인전 출품을 중단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낳은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밀레의 작품을 카피하면서 10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서양미술사를 뒤흔들 정도의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고흐는 초기에 밀레의 '첫걸음' '씨뿌리는 남자' '낮잠' 등 수많은 그림을 모방했습니다. 고흐는 37세로 불행했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약 10여 년간 900여점의 페인팅, 1100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약 2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은 대게 생애 마지막 2년 동안에 그려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만 있다면 그 실수와 실패는 잊히고 말 것입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 중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습니다. [2022년 7월 8일 결혼기념일에]





A poster for quarterly literary criticism magazine 'Creation and Criticism'
Non-commissioned poster-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SVD 1979.

...............1979년 중앙일보사가 발행했던 계간 미술 12호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명의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선정되어 수록되었습니다. 당시 계간미술 편집부에서는 미술전문지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그래픽디자인계 현황" 특집을 기획했었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도안과 및 상업미술과 혹은 시각디자인과 대학교수 50명에게 전화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득표수 순위로 10명을 선정했던 것입니다. 황부용도 당당하게 최연소 작가로 선정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황부용은 28세로 명지실업전문대학 전임강사 시절이었습니다. 국민대학교 정시화 교수가 기사 본문 집필했습니다. 그 잡지에 실린 작품이 바로 이 포스터였습니다. 이 포스터는 원래 1979년 KSVD의 회원전이 열렸던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장에 걸렸던 작품이었고 '자유테마전'이었습니다. 황부용은 이 포스터 발표로 다시 한 번 많은 그래픽디자이너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그들 사이에서 한동안 "칼로 별을 찌른다니(?)"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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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rs for marketing the corporate image of a sound equipment brand "SONORAMA"
Non-commissioned poster-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0.

...............황부용은 1980년을 전후로 한동안 별을 그리는데 집착했습니다. 옛부터 사람들은 천체를 해ㆍ달ㆍ별로 분류했습니다.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며 벼의 과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큼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온 대상도 없을 것입니다. 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밤하늘의 별보다는 만화나 게임 속의 별이 더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별을 모르고 사는 것은 세상 아름다움의 반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반은 하늘이고, 살아가는 시간의 반은 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밤하늘의 주인공이 바로 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별은 사랑을 이어주는 좋은 소재이기도 합니다. 사랑 노래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별이기도 합니다. 별자리 신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역시 사랑이야기입니다. 이 포스터는 '별'이라는 이미지가 가지는 이러한 배경을 소재로 만들어진 포스터입니다. 1980년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추천작가 부분에 발표되었던 이 작품은 '소노라마'라는 가상의 오디오 제품을 선잔하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것입니다만 다분히 문학적인 접근으로 완성한 콘셉추얼 디자인 기법에 의한 서정적 창작물입니다.





Poster for Korean Government - "National Sports Week". 1989.

...............이 포스터는 1989년 체육부의 의뢰로 만들었던 "체육주간"의 포스터입니다. 당시 주무부서에서는 온 가족이 스포츠를 일상화해야 한다는 사회체육의 개념을 강조해 달라고 했습니다. 1984년 황부용이 처음으로 유럽에 갔을 때 놀랐던 것은 사회체육을 위한 시설들이 동네마다 잘 발달된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도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가가 되면서 이제 동네마다 눈부실 정도의 사회체육을 위한 시설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할 당시에만 해도 사회체육의 개념은 없었고 엘리트체육의 개념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즉 운동선수들을 위한 스포츠시대였습니다. 당시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대한민국의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포스터는 당시 황부용이 그의 가족들을 사진스튜디오로 데려가서 여러 장을 촬영한 뒤에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변환해서 상하좌우로 배열해 구성 것입니다.





"Drinking isn't alcohol, it's years of hate - LIFE"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1978.

...............이 포스터는 1978년 대학원 재학시절 교내 전시 작품으로 발표했던 것입니다. "마시는 것은 술이 아니라 미움의 세월"이라는 시(詩)의 한 구절을 시각화 해 촛불과 술병을 매치 시킨 장식용 포스터입니다. 왜 사람들은 술을 마실까요? 즐거워서도 마시고 괴로워서도 마십니다. 커피와 차 등 다양한 기호식품이 있지만 오랜 세월 인간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것은 역시 술입니다. 로마신화에 술의 신(神) '디오니소스'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인류의 기원과 맥을 같이했던 것 같습니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왕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신과 인간 사이의 반신반인’이었습니다. 그는 태어 날 때에 불타는 빛의 세례를 받고 비에 의해서 길러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상징적 메타포로서 '비'는 포도 줄기와 잎에 생기를 북돋운 것으로 뜨거운 햇빛은 포도 열매를 익게 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연유로 디오니소스는 장성한 뒤에 그는 포도를 발견했고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했습니다.

...............원래 술은 인간이 취하려고 마신 것이 아니라 종교의식용이었다고 합니다. '신의 선물'이었으므로 대취(大醉)해서 스스로 건강을 해치고 이런저런 불미스런 사고로 이어지게 하는 술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술을 준 신의 뜻을 거역한 셈입니다. 남자다움을 두주불사(斗酒不辭) 유주무량(有酒無量)으로 측정하려는 인식이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 원조는 이른바 역사 속의 영웅호걸들입니다. 아직도 영웅호걸은 말술을 마시는 사람이란 등식이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습니다.

...............술과 시(詩)로 인생을 산 이태백 역시 주당(酒黨) 양성에 일조했습니다. 술과 인생을 하나로 보는 그의 잘못된 낭만이 수많은 모방 애주가를 낳게 했습니다. 이태백이 또 다른 이태백 같은 사람들을 양산한 것입니다. 공자는 "얼마를 마시건 주량에 따를 일이나 몸과 마음을 흐트러뜨릴 정도로 마셔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임어당은 때와 장소를 가려 술을 마시되 점잖은 자리에선 조금씩 천천히 마시고, 편한 자리에서는 낭만적으로 마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울적할 때 마시는 술은 난취하기 십상이므로 자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A decoration poster "BALLERINA"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2.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fairy tales 1981.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fairy tales 1981.

............... 만 30세였던 1981년, 명지전문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에 물감을 종이에 뿌려서 말리고 그 종이들을 오려서 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만드는 작업에 한참 매몰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부터 제가 물감을 뿌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폴락은 후기인상파로부터 시작된 사실적 표현 해체의 조형적 진화를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미국화단의 유럽화단에 대한 콤플렉스도 말끔히 제거해 주었습니다. 잭슨 폴락(1912~1956)은 1947년 마룻바닥에 펼쳐놓은 캔버스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기법을 창안해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드리핑 기법은 1952년경부터는 액션 페인팅이라고 불렸습니다. 액션 페인팅은 '의도적인 추상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캔버스 위에다가 색상을 자연스럽게 질질 흘리거나 똑똑 떨어뜨리거나 튀기거나 흩날리는 기법입니다.

...............샘 프랜시스(1923~1994)가 잭슨 폴락의 뒤를 이었습니다. 샘 프랜시스는 추상표현주의와 컬러 필드 페인팅, 인상주의와 동양철학의 요소들을 통합해 독특한 추상화 양식을 만들었습니다. 잭슨 폴록의 영향을 받은 그는 "회화란 공간의 아름다움과 견제의 힘에 관한 연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식물학과 심리학의 학사학위를 받은 뒤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프랜시스는 1953년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지만 잭슨 폴락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발표했던 시기는 1960년대 고향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부터였습니다. 1989년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엑스포시카고를 전후해서 세계적인 스타로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습니다. 국내에서는 1992년 국제화랑에서 그리고 2011년에는 페이지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32년 생으로 현재 87세입니다. 사진과 회화 그리고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자유분방하게 그 영역을 확장시켰습니다. 리히터는 1960년대 초기에는 구상사진회화, 1966년 이후에는 극사실적인 풍경사진화 및 기하학적 추상회화, 1971년경에는 사진인물화, 1977년 이후에는 추상회화와 정물화 등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리히터는 1959년 독일의 카셀에서 개최된 국제 아트 페어를 관람하면서 잭슨 폴록의 회화로부터 깊은 인상과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1980년대, 그러니까 그의 나이 50대 중반부터 리히터는 직접 제조한 스퀴즈로 여러 가지 색채를 미리 부어 놓은 캔버스를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잭슨 폴락과 샘 프랜시스의 액션 페인팅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한 것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2016년 가을 이후 춤의 에너지를 캘리그라피가 연상되는 시각적 상징의 형태로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배경 처리가 주제를 뒷받침해주지 못 해 늘 고민해 왔습니다. 그 고민을 드디어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액션페인팅 기법의 응용입니다. 문헌을 통해 잭슨 폴락으로부터 시작된 액션페인팅 기법이 샘 프랜시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로 이어졌다는 학습으로 마음 놓고 응용해도 좋을 것이라는 충분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위키피디아의 액션페인팅 해설 지면에는 잭슨 폴락과 샘 프랜시스를 포함해 모두 27명의 유명 화가들이 액션페인팅 기법을 채택하고 다양하게 응용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액션페인팅은 원시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누구라도 다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자유분방한 표현기법이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자리들처럼 잠재의식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9년 8월]





Non-commissioned poster of tourism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AFCC 1970.

...............이 포스터는 제가 만 19세였던 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2학년 학생이었을 때 '대학미전'에 출품해 은상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항구도시 '부산'을 단순명쾌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제가 6년간 부산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태풍 등으로 풍랑이 거세게 치는 날이면 부둣가에 집채만한 파도가 부딪쳐서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는 것을 교실 창문에서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오륙도(五六島)가 그려져 있습니다. 서쪽에서 볼 때는 5개 동쪽에서 볼 때는 6개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부산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 출신들은 스스로를 청조인(靑潮人)이라고 부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푸른 파도와 같은 정신을 가지자"는 의미라고 합니다. 얼마 전 오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발이 묶여 2년 반 만에 동기회에 나갔더니 안내 사인에 "부산고 22회" 라고 적혀있다고 다음부터는 꼭 "청조 22회"라고 고치라는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부산고 출신들은 "청조"라는 네이밍에서 정체성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청조인들은 청마 유치환 시인이 작사하고 세계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음악가가 작곡한 교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이 작사한 교가는 평범한 교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한 편의 세계명작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호방한 스케일과 품위있는 상징성 그리고 유니크한 시어들이 일품입니다. "아스라이 한 겨레가 오천재를 밴 꿈이/ 세기의 굽잇물에 산맥처럼 부푸놋다/ 배움의 도가니에 불리는 이 슬기야/ 스스로 기약하여 우리들이 지님이라/ 스스로 기약하여 우리들이 지님이라/ 사나이의 크낙한 뜻 바다처럼 호호코저/ 진리의 창문가에 절은 단성 후련서니/ 오륙도 어린 섬들 낙조에 젖어 있고/ 연찬에 겨운 배들 가물가물 돌아온다/ 연찬에 겨운 배들 가물가물 돌아온다" [2022년 7월]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group exhibition, KSVD 1987.





Poster for image marketing of fashion brand 'EHWAN SILHOUETTE'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3.





A poster for marketing the corporate image of a sound equipment company "PIONEER"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4.





A poster for a record company "ATRIUM"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8.





Poster for image marketing of fashion brand 'ROSETTE'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6.





Poster for the recommendation of jogging exercise. "A Beautiful Morning"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1.





A Poster for the pollution prevention campaign "Water is Life"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94.





Poster for the Central Committee on Savings Promotion "Households with a surplus
growing from door to door" - For the exhibition, KID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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