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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commissioned poster-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1.

..............."MELODIES TO SKY" "BIRD'S VOICE" 위 두 작품은 고급 오디오 제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KOREANA" 라는 회사를 가상으로 설정해 만든 브랜드 이미지 프로모션을 위한 논코밋션드 포스터입니다. 1971년 제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상업미술 전공 3학년 학생이었을 때 제6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야심작이었습니다.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는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의 미술전으로 1966년 창립되었습니다. 최고상을 목표로 절취부심 와신상담하며 만든 저의 데뷔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심사결과는 참담하게도 최고상은 커녕 특선의 반열에도 들지 못했고 입선에 그쳤던 것이었습니다. 심사위원 중 상업사진가 한 분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해 함께 했던 심사위원들이 그만 위축되어버리고 말았다는 후문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 그 어디에도 저의 이 포스터 작품과 비슷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맹자의 고자편 15장에는 "하늘이 장차 한 인물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그 몸을 지치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며 그 생활을 궁핍하게 해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틀어지게 만든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인내심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어떠한 사명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고생의 과정 그러니까 기나긴 장애물 경기를 거친 후에라야만 비로소 인물 다운 인물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유럽에서도 유명한 한 음악대학의 저명한 교수님이 아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한 제자가 모든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학교를 떠나려 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제 자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인생의 혹독한 고난과 시련뿐이네. 그 것이 자네를 최고로 만들어 줄 것이야."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을 요약하면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자 41장에 기록된 말입니다.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해 도(道)를 설명했는데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 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 또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 왜냐하면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고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쉽게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자성어입니다.

...............이와 같은 고전의 기록들은 풍상을 많이 겪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되돌아 보면 제 인생에도 풍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소년 시절에 자주 들었던 외할머니의 제 운명에 대한 예언을 상기했습니다. 제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풍파를 겪게 될 것이고 그 풍파를 다 뛰어넘어야 한다는 예언이었습니다. 벌이는 일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그러한 예언을 반복누적해서 들을 수 없었다면 저는 일찍 좌절하고 낙망해서 건강을 잃고 사라진 제 주변의 여러 인물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2006년에 방영된 일본 NHK의 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에는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명대사가 등장합니다. 공명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용맹스럽게 싸웠던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전투와 전투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다 보니 공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명예욕과 자존심이 종종 한 인간을 기가 막힐 파멸의 수렁과 웅덩이로 빠져들게 합니다. 70년이라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 주변에도 어김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몇몇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자살 이유는 바로 명예의 추락과 자존심의 붕괴였습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 속에는 전쟁을 치르다보면 때로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 자존심을 버리고 울분을 참으며 허리를 굽혀 적장의 구두끈을 매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역술가들은 사람의 운명은 타고나지만 운은 움직인다고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행운으로 만들고 불운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선택. 스스로 운을 갉아먹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는 사람들과의 지나친 경쟁의식과 체면심리 때문이며 경쟁과 체면을 의식하는 순간 불안의 싹이 자라고, 불안은 부정적 에너지로 변하며 바로 그 때 불운이 닥쳐온다는 것입니다. [2020년 1월]





Non-commissioned poster-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VIDAK 1980.





Non-commissioned poster-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80.





Poster for Korean Government-"National Sports Week". 1989.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2.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7.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KIDE 1973.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SNU 1981.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fairy tales 1981.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fairy tales 1981.





Decoration poster - A presentation of fairy tales 1981.

............... 만 30세였던 1981년, 명지전문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에 물감을 종이에 뿌려서 말리고 그 종이들을 오려서 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만드는 작업에 한참 매몰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부터 제가 물감을 뿌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폴락은 후기인상파로부터 시작된 사실적 표현 해체의 조형적 진화를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미국화단의 유럽화단에 대한 콤플렉스도 말끔히 제거해 주었습니다. 잭슨 폴락(1912~1956)은 1947년 마룻바닥에 펼쳐놓은 캔버스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기법을 창안해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드리핑 기법은 1952년경부터는 액션 페인팅이라고 불렸습니다. 액션 페인팅은 '의도적인 추상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캔버스 위에다가 색상을 자연스럽게 질질 흘리거나 똑똑 떨어뜨리거나 튀기거나 흩날리는 기법입니다.

...............샘 프랜시스(1923~1994)가 잭슨 폴락의 뒤를 이었습니다. 샘 프랜시스는 추상표현주의와 컬러 필드 페인팅, 인상주의와 동양철학의 요소들을 통합해 독특한 추상화 양식을 만들었습니다. 잭슨 폴록의 영향을 받은 그는 "회화란 공간의 아름다움과 견제의 힘에 관한 연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식물학과 심리학의 학사학위를 받은 뒤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프랜시스는 1953년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지만 잭슨 폴락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발표했던 시기는 1960년대 고향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부터였습니다. 1989년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엑스포시카고를 전후해서 세계적인 스타로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습니다. 국내에서는 1992년 국제화랑에서 그리고 2011년에는 페이지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32년 생으로 현재 87세입니다. 사진과 회화 그리고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자유분방하게 그 영역을 확장시켰습니다. 리히터는 1960년대 초기에는 구상사진회화, 1966년 이후에는 극사실적인 풍경사진화 및 기하학적 추상회화, 1971년경에는 사진인물화, 1977년 이후에는 추상회화와 정물화 등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리히터는 1959년 독일의 카셀에서 개최된 국제 아트 페어를 관람하면서 잭슨 폴록의 회화로부터 깊은 인상과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1980년대, 그러니까 그의 나이 50대 중반부터 리히터는 직접 제조한 스퀴즈로 여러 가지 색채를 미리 부어 놓은 캔버스를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잭슨 폴락과 샘 프랜시스의 액션 페인팅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한 것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2016년 가을 이후 춤의 에너지를 캘리그라피가 연상되는 시각적 상징의 형태로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배경 처리가 주제를 뒷받침해주지 못 해 늘 고민해 왔습니다. 그 고민을 드디어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액션페인팅 기법의 응용입니다. 문헌을 통해 잭슨 폴락으로부터 시작된 액션페인팅 기법이 샘 프랜시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로 이어졌다는 학습으로 마음 놓고 응용해도 좋을 것이라는 충분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위키피디아의 액션페인팅 해설 지면에는 잭슨 폴락과 샘 프랜시스를 포함해 모두 27명의 유명 화가들이 액션페인팅 기법을 채택하고 다양하게 응용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액션페인팅은 원시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누구라도 다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자유분방한 표현기법이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자리들처럼 잠재의식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9년 8월]





The 3.0 X 3.0 m Super graphic for the lobby of the Olympic Center bldg., "Harmony & Progress" 1985.





Non-commissioned poster - A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AFCC1970.

............... 이 포스터는 제가 만 19세였던 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2학년이었을 때 대학미전에 출품해 은상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항구도시 '부산'을 미화한 작품입니다. 제가 6년간 부산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태풍 등으로 풍랑이 거세게 치는 날이면 부둣가에 집채만한 파도가 부딪쳐서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는 것을 교실 창문에서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부산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 출신들은 스스로를 청조인(靑潮人)이라고 부릅니다. 푸른 파도 같은 정신을 가지자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청마 유치환 시인이 작사하고 세계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현대음악작곡가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스라이 한 겨레가 오천재를 밴 꿈이/ 세기의 굽잇물에 산맥처럼 부푸놋다/ 배움의 도가니에 불리는 이 슬기야/ 스스로 기약하여 우리들이 지님이라/ 스스로 기약하여 우리들이 지님이라/ 사나이의 크낙한 뜻 바다처럼 호호코저/ 진리의 창문가에 절은 단성 후련서니/ 오륙도 어린 섬들 낙조에 젖어 있고/ 연찬에 겨운 배들 가물가물 돌아온다/ 연찬에 겨운 배들 가물가물 돌아온다"









Three posters for the Harmony & Trust for IBM Korea, Inc.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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