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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이 전 세계 디자인계를 주도한 이면에는 1940년대 유럽인들의 대 이주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주는 전후의 혁신적인 새 작품을 위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주요 요인은 유럽인들의 대규모 미국 이민 즉, '두뇌 유출'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전위적인 포트폴리오와 혁신적인 사상으로 무장한 이들 유럽인들의 존재에 거의 공포에 가까운 위협을 느꼈다고 역사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광시대의 디자인 사상과 방법

숙명여자대학교 아태여성정보통신원이 주관하는 최고경영자 문화콘텐츠 디지털문화산업경영 전문과정에서 특별강연한 내용


화두 1: 경영과 언어

....."정치는 언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노무현 정부가 시작된 이후부터 우리들은 이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치만 언어일 뿐 아니라 오늘날 기업 활동에 있어서도 언어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디자인 선진국을 지향하면서 디자인에 있어서도 언어가 중요해졌습니다. 언어는 곧 사상입니다. 최근 삼성 이건희 회장님의 어록이 연일 화제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조 경영'과 '창조적 열정', '상상력'이란 세 단어입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건희 회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이것 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번 마음먹으면 사장단을 만날 때마다 계속 주문한다는 것이지요. 요즘 강조하는 언어는 '창조 경영'이라고 합니다." 과거 이병철 회장은 '합리주의'란 말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십 여 년 전에 중앙일보의 신문디자인 개혁과 CI 관련 일에 4년 정도 참여해서 좋은 성과를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중앙일보가 동아일보를 끌어내리고 3등 신문에서 2등 신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조ㆍ중ㆍ동이란 말이 생겨났었지요. 그 때 제가 중앙일보 회장실에서 발견한 액자 중에 이병철 회장이 친필로 쓴 "합리주의" 네 글자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 간 광고ㆍ아티덴티티ㆍ편집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프로젝트를 다루어 왔습니다. 특히 신문디자인과 관련해서는 1995년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1998년 경상일보, 2001년 전자신문, 2005년 조선일보 등의 편집 시스템 리포메이션 프로젝트를 추진해 괄목할만한 경영성과 개선에 기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편집이 작년 초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와서 그 완성도가 높아졌다고들 합니다. 작년 1월부터 금년 4월까지 조선일보의 편집디자인 사상과 방법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제가 지난해 초 조선일보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당시 중앙일보의 공격적 경영 성과로 인해 1등 신문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남과 일산 등 일부지역에서는 이미 중앙일보의 추월이 이루어져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질문하기를 도대체 신문디자인은 무엇을 디자인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신문디자인은 크게 두 가지 즉, 신문성 신문디자인과 잡지성 신문디자인으로 나눕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그래픽디자이너들은 신문디자인이라고 하면 잡지성 신문디자인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면 경향신문의 '매거진 X'같은 것이나, 각종 일간지의 연예ㆍ문화ㆍ스포츠면 같은 것들 말이지요. 그러나 경향신문이 '매거진 X'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었고 시중의 평판도 여전히 좋지만 획기적인 경영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신문사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여러분들은 경향신문이 국민일보보다 덜 팔린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신문디자인은 잡지성 신문디자인은 물론이고요 신문성 신문디자인에 초점을 맞춥니다. 조ㆍ중ㆍ동같은 신문들을 정론 지라고 합니다만 정론 지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들이 보는 신문이기 때문에 사실 그래픽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메스를 가할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스를 가해야 됩니다. "GOD IS IN DETAILS"라는 디자인 철학이 있습니다만 이 원리를 주로 적용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상과 방법의 교체입니다.

.....일예를 들어 제가 지난해 조선일보에 관여하면서 가장 먼저 도입을 주장한 것 중의 하나가 모든 지면에서 포토몽타주를 제거하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대체하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왜 제가 포토몽타주 제거를 주장했느냐 하면 그것이 10여 년 전에는 신선한 테크닉이었고 독자들에게 다양한 비주얼의 즐길 거리를 제공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조ㆍ중ㆍ동의 포토몽타주 실력이 비슷해져서 차별화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고속인터넷시대의 도래로 인해서 시중 모든 웹 사이트에 포토몽타주가 홍수처럼 범람해서 전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포토몽타주를 제거하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대체하는 전략의 채택은 쉽지 않은 측면이 많았습니다. 우선 시중에 절대적으로 관련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신문의 스트레이트 면이나 기획 면, 해설 면에 등장하는 그림은 비주얼 저널리즘이라 해서 아무나 그릴 수가 없습니다. 신문을 알고 저널리즘을 알아야하고 품위와 크리티시즘 등을 갖추어야 합니다. 새로운 일러스트레이터의 기용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젊은 피가 수배되었고 수혈되었고 편집국 내부에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는데 약 6개월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신문사가 이 시스템을 모방하려면 아마도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입니다. 당분간 이 부분에서는 경쟁지에 비해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고 이러한 성과는 바로 발행부수 증가와 광고수주확대로 이어졌습니다. 괄목할만한 경영성과가 바로 수치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여기서 신문디자인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10여 년 간 제 관심사는 '발광시대의 디자인 사상과 방법'입니다. 지난해 연말 저는 조선일보의 송희영 편집국장과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조선일보의 2006년 신년 기획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불과 연말연시를 열흘 앞둔 시점에서 조선일보의 신년기획물이 바꾸어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10년을 잘 경영하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경고성 기획물을 준비해놓고 각종 비주얼들을 개발해서 편집의 완성도를 검토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 기획이 이미 과거에 조선일보가 몇 번 써먹은 것이어서 신선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했고 그 대안으로 21세기 초에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될 화두는 '하이브리드 컬추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때는 이어령 교수님의 '디지로그'가 세상에 소개되기 전이었습니다. 송 편집국장이 즉석에서 제 제안을 채택했고 불과 열흘 만에 조선일보의 경제부와 삼성경제연구소가 대단한 걸작을 만들어내더군요. 저는 그 때 정말 놀라서 까무러칠 뻔 했습니다. 조선일보와 삼성경제 연구소의 맨 파워,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것이 바로 "세계는 창조적 공존으로 간다. 한국식 &+를 찾아서"로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그 시리즈의 결론에서도 언급된 것입니다만 대한민국이 역사상 지금처럼 에너지가 충만한 적은 없었습니다. "EXPECT THE UNEXPECTED."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 문구는 뉴욕타임즈가 1970년대 초에 셀프 프로모션 광고에 헤드라인으로 썼던 것입니다.

.....내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이 21세기에 과연 위대한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백성들이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로부터 얻어낸 최고의 성과는 아마도 갖가지 내우외환과 좌충우돌하는 리더십으로 말미암아 온 국민 모두가 참으로 피곤하게 살아왔으며 이 난세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문제로 남녀노소 온 국민들이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염려하고 또 걱정해 왔다는 것일 것입니다. 아무쪼록 더 이상 미련한 백성이 되지 않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신 차려 내년 대선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만 이 난처한 세월에 우리 대한민국 백성들이 당면한 혼돈의 의미를 우리 유권자들이 앞으로 남은 일년 동안 잘 묵상해서 대전환의 한 시대를 이끌어 위대한 선진 대한민국을 창조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에게 한 표를 던져야할 것입니다.

.....10월 31일자 조선일보 홍원상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선진국을 향한 길을 걷고 있기는커녕 실패한 나라의 모델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합니다. 30일 정부의 복지국가 청사진 ‘비전 2030’의 민간 작업단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국가들의 주요 공통점으로 강력한 리더십과 정책 일관성의 부재, 노사분규의 장기화 및 경직된 노사관계, 극심한 여야 대립 등 정치체제 불안이 꼽혔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들 3개 요소를 거의 완벽하게 갖춘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답니다.

.....한국의 정책 일관성 부재는 특히 현 정부 출범 후 두드러지고 있답니다. 해방 후 일관되게 경제운용의 기본방향이 돼온 성장과 시장경제가 현 정부 출범 후 등장한 분배주의ㆍ평등주의에 의해 크게 훼손되면서 경제ㆍ교육 정책 등에서 불확실성이 증폭됐답니다. 이에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위축되고 해외 투자가 증가하면서 국내 산업 공동화가 심해지고, 선진국 진입의 필수요건인 성장 잠재력이 급격히 무너졌대요. 이 때문에 2003년 이후 세계경제의 상승무드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에는 내수침체가 가속화되고 고용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군요.

화두 2: 창조적 경영

.....이명박 님이 구상중인 한반도 대운하는 지난 대선 때의 충청권 수도 이전과 같은 폭발력을 보일 것인가요? 대선 예비 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이명박 님은 지난 10월 24일 유럽 3개국 순방길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의 기술적 검토를 끝마쳤다"며 "건설을 시작한 이후 4년 이내에 완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답니다.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만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고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바로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주지요.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찾아옵니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습니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입니다.

.....국가나 사회,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하면 기쁨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일손을 멈추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찾아옵니다. 창조하는 국민과 백성들은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물주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님이 구상중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은 경부고속도로ㆍ서울올림픽ㆍ한일월드컵ㆍ행정중심도시건설에 못지않은 창조적인 구상으로 대한민국 백성들을 멋있게 만들고 대한민국 백성들이 향후 4~5년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설렘으로 살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 이명박 님에게 '한반도 대운하'는 이미지 마케팅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대단한 언어의 발견이며 채택입니다.

.....10월 26일자 조선일보 김봉기 기자에 따르면 이명박 님의 '한반도 대운하'구상에 대해 여야 다른 대선주자 진영은 대선 이슈화를 경계하는 모습이라고 하는군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이전 공약이 찬반 격론을 통해 대선 판도가 노 대통령 중심으로 굴러가게 됐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박근혜 님은 타당하면 수용할 수도 있겠지만, 타당성 자체를 미지수로 남겨두겠다는 반응. 손학규 님은 "국가 체질을 바꾸는 일이 더 시급하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대선 공약을 내놓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철저히 검증해보겠다" 고 했고,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열린우리당 유필우 의원은 "겨울에는 3개월 정도 운영할 수 없는 등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국토개발연구원 보고서가 있다"고도 했다는군요.

.....같은 날짜 조선일보 권대열 기자의 보도에 의하면 이명박 님은 24일 독일에서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직접 둘러보면서 자신의 대선 핵심 공약이 될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구상을 밝혔답니다. 이 전 시장은 "국내외 학자 60~70명이 10여 년 간 기술적 검토를 마쳤으며 시작 후 4년 이내에 완공이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루겠다."고 말했다는데요. 한반도 대운하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와 금강과 영산강을 연결하는 '호남운하'를 각각 건설해 남쪽 지역의 물줄기를 하나로 연결한 뒤 이를 장기적으로 북한의 신의주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으로 당내 경선부터 논란이 예상된다는군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펩시가 코카콜라 제국을 넘어서는 데는 100년이 걸렸습니다. 70년간 저가 전략으로 2인자 자리를 확고히 한 뒤 30년 만에 1위까지 올라선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이 너무 극적이었기에 마케팅의 교과서가 되어버렸습니다. 펩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93년. 코카콜라에 딱 7년 뒤졌습니다. 하지만 펩시는 100년간 코카콜라의 등을 보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코카의 '선점효과'가 그 만큼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까지 펩시는 코카콜라와 가격은 비슷했지만 품질은 그저 그런 콜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경영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펩시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1933년 중대 결단을 내렸지요. 콜라의 가격을 코카콜라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버렸던 것입니다. 회사의 자금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박리다매로 전환한 셈이지요. 그러나 이면에는 중요한 판단이 숨어있었습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냉철하게 판단하면 그 정도 가격이 적당하다는 게 경영진의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그 결정은 펩시콜라를 확고한 2인자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로얄 크라운과 닥터 페퍼 같은 군소 업체들이 펩시의 저가 전략에 무릎을 꿇었지요. 1위로 가는 징검다리를 확보한 셈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순풍에 돛단배처럼 나아갔습니다. 광고로 이미지를 올리며 가격도 서서히 높였지요.

.....그러던 중 1970년 위기가 닥쳤습니다. 원료 값이 크게 오른 것입니다. 2위를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 펩시의 경영진들은 또 한번 중대 결단을 내립니다. '콜라 전쟁'을 선언한 것입니다. 우선 코카콜라와 같은 수준으로 제품의 가격을 올리고 마케팅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눈을 가리고 시음하면 펩시콜라의 맛이 좋다는 사람이 더 많은데도 소비자들은 코카콜라만 찾았으니까요.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에 절망감을 느꼈겠지요. 고민하던 끝에 펩시는 불리한 처지를 역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75년 텔레비전에 한 편의 광고를 내보냈지요. 눈을 가리고 콜라를 마시던 사람이 눈가리개를 벗으며 "어~ 펩시잖아!"를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입소문이나 이벤트로 인지도를 높이는 '버즈(BUZZ) 마케팅'을 사용한 것입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코카콜라의 과민 대응에 오히려 펩시의 인지도는 더 높아졌지요. 이 광고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코카콜라와 30%가량 차이가 나던 시장점유율은 10%까지 좁아졌답니다. 펩시는 고무됐지요. 70년 만에 1인자 곁에 다가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10%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더 힘들었습니다. 따라 해도 2등은 되지만 1등이 되기 위해서는 1등보다 뛰어난 것이 있어야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젊은 세대를 집중 공략하는 다음 세대의 선택 - "THE CHOICE OF NEXT GENERATION"을 기치로 삼았습니다. 이 깃발 속에는 코카콜라를 쉰 세대로 밀어 넣는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이 담겨 있었습니다. 펩시는 이 브랜드 포지셔닝으로 기성세대를 집중 공략하는 코카콜라와 정면충돌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20년을 쏟아 부은 피땀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펩시를 즐기던 청소년들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면서 코카를 누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처지는 거꾸로 됐습니다. 코카콜라는 이게 진짜 - "THE REAL THING"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워 공세를 폈지만 어렸을 때부터 펩시에 길들여진 입맛이 바뀔 리 없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펩시는 지난 2004년 말 매출에서 25%, 총이익에서 10% 코카콜라를 앞섰습니다. 지난해 말 시가총액마저 코카콜라를 추월했답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오리콤의 전신인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에서 말단 신입사원으로 OB맥주를 1년간 담당했던 경험이 있고요, 40대 중반에는 인피니트에서 2년간 공동 대표로 참여하면서 하이트맥주와 관련된 몇 건의 CI와 BI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선맥주주식회사'의 크라운 로고를 로마자 'THE HITE.'로 바꾸고 젊은이들을 위한 '엑스필'맥주 브랜드를 개발하는 일 등을 주도했었습니다. 그래서 OB맥주와 하이트맥주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크라운맥주를 생산하던 조선맥주주식회사에서 하이트맥주를 출시할 때만 하더라도 맥주시장은 OB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OB는 이미 맥주의 대명사였고, 브랜드 이미지 및 선호도 또한 OB가 훨씬 앞섰습니다. OB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이트맥주 만의 단일 브랜드로 강력한 차별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였습니다. 이 무렵, 국내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고, 제품명ㆍ이미지ㆍ색상ㆍ제작기법 등에서 자연의 순수함을 강조한 '그린 이미지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이트맥주는 기존 맥주와의 차별점, 즉 암반 천연수를 원료로 한 점을 내세워 광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승리의 여신의 손짓인 양, 이 시기는 OB맥주 생산업체인 두산이 '페놀'사건으로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질타를 받고 있었던, 절묘한 타이밍의 시기였지요. 차별 우위점을 확보하기 위해 맥주의 주된 구성성분인 물이 지하 150m의 천연 암반수라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맛 이미지'의 절대 우위를 견지하고 있는 경쟁사의 독점적 포지셔닝 공간을 전면 이동 시킬 수 있는 전략성 컨셉으로 채택되었습니다.

.....1993년 4월, 드디어 하이트를 알리는 1차 런칭 광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지하 150m의 100% 암반천연수로 만든 순수한 맥주 - 하이트"는 소비자들에게 차츰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트맥주는 기존의 맥주 시장을 2분 구도화 해, 하이트는 '물이 좋은 맥주'라고 차별화 해 포지셔닝 시켜 나갔습니다. 즉, '물'을 경쟁도구로 삼아 타제품과의 차별을 꾀했던 것이지요. 이어 "맥주를 끓여 드시겠습니까?"에 이어 "맥주의 90%는 물, 어느 맥주를 드시겠습니까?"의 광고를 제작해서 집행했는데, 이 광고들은 브랜드 개념을 명확히 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94년 1월, OB맥주 공장이 환경관리모범업체로 선정되면서, 환경 문제와 제품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OB는 대대적인 신문광고를 게재했습니다. 이 때, 이미 하이트는 OB 맥주에 대해 다각적인 대안을 준비해 놓고 있었으므로, 느긋하게 대응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OB에 대응하는 첫 탄은 "왜 물은 가려마시면서 맥주는 가려마시지 않습니까?"라는 헤드라인의 광고였습니다. 이 광고가 집행될 당시, 낙동강 수질 오염 사태가 발생, 언론과 사회 일각에서 대단히 '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때여서 하이트에겐 더욱 유리한 입장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어 집행된 2탄은 "말 못하는 맥주, 말할 수 있는 맥주"라는 헤드라인의 신문광고로 경쟁사인 OB의 약점을 건드리는 광고였습니다.

.....이렇게 점차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한 하이트맥주는 "하이트 신화"를 테마로 해 광고를 집행해 나갔습니다. 하이트맥주 광고는 적절한 시기에 소비자의 마음에 크게 어필한 광고로, 그 당시 환경에 대한 관심의 고조를 잘 반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이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정교화 시키기 위하여 '물'하면 '하이트', 하이트하면 '암반 천연수'가 즉시 연상되도록 해, 향후 경쟁제압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화두 3: 기호의 힘

.....2002년 대선에서의 경이적인 승리로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이후 장기불황ㆍ이념대립ㆍ과거사 청산 논란ㆍ행정수도 이전 논란ㆍ북핵문제ㆍ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시도ㆍ이라크 파병 등 대한민국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내우외환들을 극복해 나가는 와중에 있습니다. 오늘의 특강은 이러한 시기에 제가 지난 30여 년간 그래픽디자이너로서 또 디자인컨설턴트로서 부딪치고 고민해왔던 서구 디자인의 모방과 표절로부터의 구체적인 탈피방법론을 저와 제 주변 인물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터득한 깨달음을 토대로 나름대로 주관적으로 피력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고민들을 안고 있는 21세기를 헤쳐 나갈 한국의 창조자들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랜 세월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해 왔습니다. 반만년 가난에 시달린 이 땅의 민초들을 생각하면 실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노태우 정권 시절 연세대학교의 최평길 교수가 세계 여러 석학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조선일보에 발표했었는데 세계 여러 석학들 대부분이 1997년에는 한국에서 여야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한국의 정치문화 선진화가 시작된다는 예측을 내놓았었습니다. 그 것은 제게 매우 인상적이었고 오랫동안 제 뇌리에 남아있었습니다. 그 때는 감히 아무도 평화적인 여야 정권 교체를 생각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구촌시대의 기류를 호흡하기를 좋아하면서 저는 무엇보다 한국 정치문화의 선진화를 우선적인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2002년 대선에서 저는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참여정부의 기반은 촛불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 촛불의 힘에 반했던 것입니다. 그 것은 인터넷 통신 수단을 이용한 이 땅의 젊은이들의 무혈 혁명이었습니다. 그 뿌리는 물론 1960년의 4ㆍ19혁명으로 이후 우리나라에는 젊은이들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선진화를 위한 저항문화의 뿌리가 깊게 자리잡아왔었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촛불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촛불로 대통령 직을 지켰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있을 때 20~30대 젊은이들이 탄핵 반대 촛불을 들고 노대통령의 탄핵을 막아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개혁을 요구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당당한 경제와 당당한 외교를 실천해주기를 바라면서 탄핵을 막아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존재하지만 촛불은 대다수 20~30대 정보화세대들의 힘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사 40대 이상의 산업화세대와 민주화 세대들의 서운함이 있다하더라도 그 힘이 우리 조국의 미래를 만들고 있음을 직시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40대 이상의 산업화세대와 민주화 세대들이 이룬 업적을 존중하지만 또한 그 엉성한 달빛 문화의 한계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보란 듯이 당당하게 촛불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여정부의 기반이 되었던 촛불 세대들은 현재 종사하는 각 분야에서 여태까지 지구상에서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감각을 탄생시키면서 획기적인 고부가가치의 발광체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정치에서의 이미지 마케팅에 관한 문제가 모든 언론들의 최고 관심사로 부상했습니다. 내년 2007년 12월의 대선도 무엇보다 인물과 그 인물을 위한 이미지 마케팅 기법이 대선의 당락을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것 같군요. 많은 지식인들이 대통령이나 시장을 충동구매 할 순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만 이는 역설적으로 21세기에 한국정치가 처한 새로운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물의 효율성이나 기능성보다 기호와 상징성이 우리의 삶을 더 강력히 규정하는 후기산업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청량음료를 마실 때 소비자가 맛 그 자체를 마시는 것일까요? 멋진 청춘남녀들이 등장해서 엮어내는 현란한 음료광고의 이미지, 즉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미지로서의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입니다. 상품의 기호화 현상의 극단적 형태는 더 비싸기 때문에 오히려 잘 팔리는 사례에서 발견됩니다. 수십 만 원이 넘는 명품 청바지가 품질차이가 거의 없는 저렴한 제품에 비해 더 잘 팔리는 현상을 보십시오. 상품의 기호화 현상이 더 진행되면 제품의 이미지가 콘텐츠를 압도하게 됩니다. 이미지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지 마케팅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고 당선 후에는 이미지 마케팅을 아랑곳하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바람에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의 한 의사 친구가 제게 건네 준 "의사와 판사는 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되고 나면 밥 벌어 먹기는 정말 쉽다"고 말한 농담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잘 아는 병에 걸린 환자가 찾아오면 여유 있게 정성껏 치료해주고 자기가 잘 모르는 병에 걸린 환자가 찾아오면 내일 다시 오라고 한 뒤 의학서적 등을 찾아보고 그래도 모르는 병이면 큰 병원을 소개해주면 된다는 것이죠. 판사 역시 사건을 담당한 후 과거의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례를 뒤져서 판결문을 작성하면 된답니다. 물론 농담으로 과장해서 한 이야기겠지만 요즈음 소위 중앙 일간지의 사설과 칼럼들을 읽어보면 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되기만 하면 저도 논설위원 봉급쯤은 쉽게 타 먹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앙일간지들의 품질이 이렇게 떨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거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저항과 타도에만 익숙해진 채 김영삼 문민정권 탄생 이후 국제적인 신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만한 이렇다할 한국적 패러다임을 찾아 변신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특히 김대중 정부 탄생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터넷 세상, 고도정보화사회에서 신문이 더 이상 여론의 주도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정권, 특히 대통령과 관련된 기사를 그것도 공격적으로 써야 기자로서의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은 아닌지요? 신문의 주요 기능 중의 하나가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이지만 감정적 감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IMF 환란이 닥치기 1~2년 전부터 제가 출입했던 여러 유흥음식점이나 택시 속에서는 당시 한국인들이 너무 흥청망청 하기 때문에 한번 호되게 날벼락을 맞아 망하리라는 이야기들을 자주 들었지만 어느 신문에서도 IMF 환란을 예측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사설이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국민들이 예견한 IMF 환란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신문이 이대로 가면 곧 나라가 망할 거라고 외쳐 댄다면 누가 과연 그 말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 대선에서 4년 8개월 동안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다 두 달 새 상황이 반전돼 낙선의 쓴 잔을 마신 이회창 님의 경우, 여러 가지 패인이 있었겠지만 저는 매스컴을 통해 폭넓게 알려지고 점검되지 않은 한 가지 이유로 그의 외모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으로 정치지도자들 서열을 매겨 사각형ㆍ원형ㆍ삼각형 순으로 삼분해서 그 적합도를 따져 나간다면 박정희 님은 전형적인 사각형 이미지의 지도자이고 이회창 님은 전형적인 삼각형 이미지의 지도자라 할 수 있겠죠? 실제로 이회창 님은 1997년 첫 대선 데뷔에서 조ㆍ중ㆍ동 같은 중앙언론사의 만평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역삼각형으로 묘사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아 주변 참모들에게 대책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7년 노태우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격돌했을 때도 상대적으로 노태우 후보가 김대중 후보에 비해 훨씬 더 안정감 있는 사각형 이미지의 지도자로 어필했었죠. 1992년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와 격돌했을 때도 상대적으로 김영삼 후보가, 1997년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격돌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김대중 후보가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격돌했을 때도 상대적으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 비해 훨씬 더 안정감 있는 사각형 이미지의 지도자 였었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미지 마케팅 측면에서 박정희 대통령 이후 한국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경쟁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사각형 외모를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2004년 2월 오명철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차기 대통령이 투사나 운동권 출신이 아닌 실용주의자이기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그 방면 출신들이 대통령이 돼 한풀이를 하느라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사례를 봐온 탓이라더군요. 임기 중에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다시 쓰는 역대 대통령들한테 데어 역사관보다는 현실관을 더 중요시 할 작정이라고도 했습니다. 세금 제대로 내고, 남에게 월급을 받기도 하고 줘보기도 한 사람, 개혁과 투쟁보다는 조정과 타협에 능숙한 인사가 좋겠다고요. 깨끗한 무능보다는 때 묻은 유능이 나은 것은 물론. 그런 점에서 정치인보다는 기업인, 학자보다는 공무원 출신을 선호한다고도 했죠. 자수성가 형보다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인사이기를 바란대요. 군 출신 대통령들의 육군사관학교와 명문대 출신에 대한 편애, 고졸 신화를 이룬 대통령들의 학벌 콤플렉스에 의한 폐해를 지켜봤기 때문. 지나친 콤플렉스와 과도한 프라이드는 종종 심각한 통치 장애를 유발. 두려운 것은 고학으로 역경을 딛고 신화를 창조한 이들에게 콤플렉스와 프라이드가 혼재돼 역사 전체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 가정적으로는 남녀유별을 강조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지요. 당사자 못잖게 친구와 참모들의 면면도 따져봐야겠죠? 노는 물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더군요. 하지만 소속 정당은 가리지 않을 작정이라고요. 어차피 급조되거나 집권 후 해체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이 아닙니까? 욕심 같아서는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훤칠하고 잘 생긴 대통령을 가질 때도 됐다고 했으며, 케네디와 클린턴이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것은 미남에 성적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더군요. 국민들은 이제 '상감'같은 대통령보다는 '연인'같은 지도자를 원한다고 하면서 배우자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배꼽 아래에서 벌어진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죠.

.....수많은 지식인들이 대통령이나 도지사, 시장을 충동구매 할 수는 없다고 외치고 있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들도 이미지 마케팅의 포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바로 위에 소개한 오명철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생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2007년 12월의 대선은 무엇보다 인물과 그 인물을 위한 기호화된 이미지 마케팅 기법이 대선의 당락을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것 같군요.

화두 4: 사상과 방법

.....2005년 1월, 국내 영화계와 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아카데미상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2004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출품작이 논란 끝에 뒤바뀌는 해프닝을 거쳐 미국영화과학예술아카데미에 보내졌던 '태극기 휘날리며'는 1월 25일 발표된 외국어영화상 부문 최종 후보 5편에서 제외됐습니다. 2004년 9월 영화진흥위원회가 소집한 아카데미 출품작 선정 심사위원회는 5인 만장일치로 김기덕 감독의 '빈집'을 뽑았으나 '국내에서의 통상적인 개봉'이라고 규정한 아카데미 출품 자격 요건을 문제 삼으며 결국 '태극기 휘날리며'로 결과를 번복, 격렬한 찬반 논란을 낳았습니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이 작품을 유력한 후보로 꼽기도 했으나 결국 최종 후보에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제외됐습니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1,174만 명을 동원한 흥행대작으로 한국에서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거의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 수준의 걸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난 직 후에 남는 씁쓸함이라면 아마도 이 영화가 1998년 할리우드에서 제작 발표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영화의 사상과 방법의 선택에 있어서 너무 닮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2005년 11월 2일자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은 10월 26일 국회의원 재선거 패배 이후 국정운영 및 당 지지도 하락 원인 중 하나로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을 꼽았다고 합니다. 2002년 대선 때 기획한 정치광고 '노무현의 눈물'과 '기타 치는 대통령'에서 보여줬던 순수한 모습, 노동자와 함께 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2005년의 노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만을 강조하는 이미지가 더욱 강렬하다는 분석. 열린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를 포함해 당의 독자성 결여, 이념 공방, 청와대 인사정책의 난맥상 등 총 10가지를 정부 및 열린우리당 지지도 하락의 원인으로 자체 분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저의 눈에 띄는 보고서 내용으로는 청와대 인사방식의 문제점으로 참여정부가 과거 정부에서 주로 애용하던 국면전환용 개각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함으로써 4월 30일 치러진 재ㆍ보선 패배나 경기침체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002년 대선에서 저는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사실 이후 후회가 막심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참여정부의 기반은 촛불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 촛불의 힘에 반해 내 주변의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이웃들을 독려해서 표를 몰아주었던 것입니다. 그 힘이 우리 조국의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산업화세대와 민주화 세대들이 이룬 업적을 존중하면서 그 기반 위에 보란 듯이 당당하게 새로운 발광체로서의 정치문화를 만들어 줄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앞에서 제가 정치는 언어라고 소개했습니다만 이미지 마케팅의 성공으로 난적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이미지 마케팅을 내팽개치다시피 하면서 오기와 독선의 정치를 해왔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미지마케팅은 부가가치를 품질가치 이상으로 높이거나 품질가치 이상으로 낮추는 효과로 작용합니다. 브랜드 성공의 3대 요소를 퀄리티ㆍ아이덴티티ㆍ퍼블리시티라고 합니다만 노무현 정부는 아이덴티티와 퍼블리시티 측면에서 집권 초기부터 철저히 품질가치 이상으로 낮추는 효과를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헝클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또다시 통치행위에 피드백 되고 더 헝클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이 취임 5주년을 계기로 그룹 로고를 과거 별 세 개를 그려놓고 계열사별 마크는 각 계열사별로 따로 쓰던 것에서 타원에 'SAMSUNG'이라는 영문 이니셜을 새긴 형태로 통일화시킨 것이 1993년 3월이었습니다. 당시 삼성그룹 관계자는 "안정적이고 고객에 대한 신뢰감과 친숙감을 높이기 위해 청색을 사용했으며 세계무대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상징하는 타원을 채택했다"라고 공식적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 CI 작업을 주관했던 비서실 관계자를 제가 직접 만나본 바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 소재한 디자인회사 L&M에서 제안했던 창조철학, 즉 "삼성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이 마크를 부착하고 삼성이 세계무대에서 세계인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업이 되게 하라."는 메시지가 이건희 회장을 크게 감동시켰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3개월 후인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모두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선언이 있었고 이후 삼성그룹의 경영혁신 과정은 외국의 주요 경제잡지들까지 특집으로 소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요. 국내에서는 '이건희 신드롬'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했고, 그 후 시중에는 여러 종류의 삼성 경영서가 인기리에 시판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최고 경영자가 어떤 사상과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2005년 여름,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츈 지가 7월 12일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04년 매출액 719억 달러에 순익 94억 달러를 기록, 기업순위 39위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2004년 54위였던 삼성전자가 2005년 15단계 상승한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삼성전자는 1980년대 초까지 만해도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여관방에서 합숙하면서 일본 VHS 비디오를 한 꺼풀씩 벗겨가면서 역으로 설계해서 자체 생산 가능한 부품과 수입해 와야 하는 부품들을 가려서 제품 개발을 해왔던 전형적인 개발도상국가의 그저 그런 기업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결국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주식회사대한민국'의 CEO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한 사상과 방법의 실패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7년 12월에는 정말 한국 국민들이 자신과 이웃들을 위해 신중하고 탁월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군요.

.....1993년 7월 7일자 조선일보에는 김진현 님의 "중국이나 일본만큼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아침마다 잉크 냄새까지도 향긋한 조선일보가 배달되기를 기다리면서 저는 이어령 님과 김진현 님에 관한 글들을 자주 스크랩 했었습니다. 김진현 님은 지난 1993년 7월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케로그센터에서 열린 제1차 미국코리아학 국제학술대회에서 "지정학적ㆍ지경학적 관점에서 아시아ㆍ태평양의 새 질서를 모색한다."는 논문을 발표했었습니다. 내용인즉 한국의 모든 변화나 발전을 제약하고 압도하는 것은 지정학적ㆍ지경학적ㆍ역사적 요소들이다 라는 것이었는데요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 한반도는 미소중일 4강의 십자로에 섰다는 것이죠. 세 나라와는 국경을 같이 나누고 아시아대륙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유일한 땅이 한국이기도 해서 한국만이 이들 4대 세계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구상 유일무이한 지정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국제정치상의 예외적인 위치로 해서 한국은 모든 면에서 후진ㆍ중진국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소득 역시 중간 소득 국으로서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최 일류의 높은 질의 국가ㆍ민족이라야 4강에 대해 의미 있는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독도와 다케시마 문제ㆍ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ㆍ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ㆍ남북통일의 시기와 방법에 관한 문제ㆍ간도협약 원천 무효 제기 문제 등을 지켜보면서 문득 과거의 스크랩북을 열어서 김진현 님의 글에 담긴 깊은 뜻들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았습니다. 김진현 님이 말했던 '작지만 강한 나라'는 현재의 싱가폴과 같은 나라를 구상했겠죠. 혹시 지금 우리 한국인들이 주제넘게도 1945년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맞이했고 1953년 스스로의 힘으로 남북전쟁에서 이겼으며 1970년대 이후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50여 년간 그 이유야 어떠했든 미국과 일본의 도움이 지대했으며 세계 10위권 이상의 경제대국 지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려면 향후 중국과 러시아의 막대한 도움도 필요하겠죠.

.....저는 여기에서 삼성생명 본관 1층에 개설된 '로댕미술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20세기 마지막 로댕 갤러리가 1999년 5월 12일 한국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삼성생명ㆍ조선일보ㆍ문화방송은 태평로 삼성플라자 1층 글래스 파빌리언에서 로댕 갤러리 개관 기념행사를 개최했었지요. 한국은 프랑스ㆍ미국ㆍ일본ㆍ스위스에 이어 5번째로 로댕의 진품 '지옥의 문'을 보유한 나라가 됐습니다.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당시 축사에서 "지구촌시대, 전통문화의 바탕위에 해외문화를 수용, 교류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었지요. 1990년대 초 이어령 님은 로댕의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예로 들면서 21세기 한국의 기업들은 로댕의 조각 작품 같은 개념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댕의 조각 작품을 녹여서 구리로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몇 십만 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이 로댕의 조각 작품을 들여오면서 지불한 금액은 아마도 그 구리 값에 비하면 수 백 배, 수 천 배의 액수에 이를 것입니다. 그날 개관식에는 물론 이어령 님도 참석하셨습니다만 이어령 님은 1990년대 초에 국내 최고경영자들에게 아주 대단한 컨셉트를 제공했고 삼성은 이 동기부여를 현실로 만들었고 삼성생명 본관 1층에 시각화함으로서 21세기에 삼성이 추구하는 경영 목표와 가치가 무엇이라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 이건희 회장님의 입에서 나와 언론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화두 '창조 경영'과 '창조적 열정', '상상력' 세 단어는 태평로 삼성플라자 1층 글래스 파빌리언에 개설된 '로댕미술관'이 일년 365일 웅변으로 임직원들에게 반복누적해서 알기 쉽게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5: 발광시대

.....6O년대 초 서구의 모더니즘 디자인이 상륙한 이후로 어언 4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한국의 건축ㆍ디자인계에서 상대적으로 각광받았던 인물들 상당수의 작품들이 넓은 의미에서 모방과 표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아직도 한국의 건축ㆍ디자인계가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 2003년 2월 26일,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붕괴된 WTC 재건축 설계안 국제 공모 결과, 최종 후보로 선정된 2개 작품 중 '다니엘 리베스킨드' 건축 설계사무소 안이 당선작으로 확정됐다고 보도했는데 그는 원래 1946년 폴란드 출신으로 1965년 미국으로 이민했던 사람입니다. 국내에도 삼성동에 건설된 현대산업개발 본사를 파격적으로 설계해 건축ㆍ미술ㆍ디자인계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요. 오늘날 미국이 전 세계 디자인계를 주도한 이면에는 1940년대 유럽인의 대 이주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주는 회화ㆍ건축ㆍ디자인 등에서, 전후의 혁신적인 새 작품을 위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주요 요인은 유럽 유수의 예술가ㆍ과학자ㆍ건축가ㆍ작가들의 대규모 미국 이민 즉, '두뇌 유출'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동 분야 터줏대감들은 전위적인 포트폴리오와 혁신적인 사상으로 무장한 이들 유럽 인들의 존재에 거의 공포에 가까운 위협을 느꼈다고 역사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 도시계획ㆍ건축ㆍ디자인은 서구 사회가 이미 완성도 면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60년대에 겨우 그 첫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출발에서부터 상당한 시차가 있고 그래서 고유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고 앞으로도 결코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시차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물론 '두뇌수입'입니다. 고유문화가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서구 국가들 중에서 코리안 드림을 동경하는 우수한 두뇌들을 수입해서 그들의 재능과 감각을 한국의 전통 조형 요소와 결합시켜 하이브리드화 해야 21세기에 국제시장을 향한 고도의 국제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에는 이미 세계의 모든 건축ㆍ디자인 관련 정보, 기술과 장비들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문제는 사상과 방법인데 이어령 님은 이미 오래전에 ‘달빛 문화’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못 박은 바 있습니다. 이어령 님은 1993년 여름 조선일보와의 대담에서 한국의 현대문화가 세계화를 지향한지 오래됐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 지향에 머무르고 있는 것에 대해 외국에서의 활동을 후광으로 삼으려는 전략으로 한국문화가 스스로 발광체가 되지 못하고 서구문화의 태양을 받아 되쏘는 '달빛문화'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지요. 선진 서구의 이질적인 문화의 재능과 감각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인들과 함께 여태까지 지구상에서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감각을 탄생시킨다면 그 것은 획기적인 고부가가치의 '발광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가 원래 계획을 일부 수정보완해서 추진하고 있는 행정중심도시건설 프로젝트는 도시계획ㆍ건축ㆍ디자인 분야뿐만 아니라 여러 창조적인 분야에서 획기적인 고부가가치의 '발광체 창조'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행정중심도시건설 이전문제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첫째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인데 아니 서울에 있는 비싼 땅과 집들을 팔아서 그 돈으로 시골에 더 넓고 근사한 집을 짓겠다는데 돈이 더 들면 얼마나 더 들겠습니까? 둘째로 수도권이 공동화된다고 반대한다는데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행정수도 기능이 떨어져 나가면 그 자리는 자연히 최첨단 비즈니스 관련 시설들이 앞을 다투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국제 콤페를 거쳐 근사한 개념도와 조감도ㆍ축소 모형 등이 발표되고 있으며 이어서 이 계획이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고 국내 관련 학계의 다양한 학술적 지원과 관련 기업들의 참여 경쟁이 벌어지면서 환상적인 설계가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특히 20~30대 젊은 세대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게 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해방이후 이루어진 현대 한국의 도시건설과 건축문화에 대해 서구 사회의 세계적인 거장들은 늘 안타까움을 표시해왔습니다. 조선시대 500여 년간 그토록 우아한 건축문화를 이룩해내었던 위대한 한국인들이 지난 20세기 후반 50여 년간 이루어낸 도시건설의 업적들은 한마디로 그들이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엉성함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읽어보면 1952년 부산 유엔군 묘지 조성 공사를 수주한 후, 12월 아이젠하워가 방한했을 때 묘지에 보리를 심어 파란단지로 위장해 '원더풀~!'을 받아낸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지난 70년대 이후 개발 독재시절 한국의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모토는 단연 '우리도 할 수 있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창조'보다는 오히려 '모방과 표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왔습니다.

.....지난해 황우석 교수 사태의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발견한 희망이라면 무엇보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활약과 건전한 비판세력의 존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12월 20일자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기고에서 지적했듯이 이들은 체계적이면서도 또 논리적이고, 무엇보다도 정직하게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젊은 과학자들은 정치색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스스로 정직하려 했고 또 한국의 우상과 권위에 정당한 도전을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한국에서 각 분야에서 지도자들이 진정 선진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선진화라는 구호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나누어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사회를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슈에 따라 가장 정직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적용해 잘못을 비판하고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공식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면 바로 황우석 교수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희망을 이끌어 낸 건전한 비판세력으로서의 젊은 세대의 활약과 역할이 크게 기대될 것이며 많은 젊지 않은 유권자들도 함께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자 할 것입니다.

.....한국에 아이덴티티 디자인회사들이 참으로 많고 그들이 모두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데 왜 아직도 우리 모든 한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과 여권의 디자인 수준은 여전히 촌스럽기 그지없을까요? 저는 그 이유 중의 하나도 반사문화적인 어프로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내의 저명한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께서 집으로 초대해서 옥상 가든에서 파티를 하는데 참가했습니다만 그 주거단지의 이름이 '린든그로브 - LINDEN GROVE'였습니다. 참피나무 숲이라는 뜻이더군요. 그런데 저를 차에 태워서 운전하면서 함께 갔던 분이 영국 런던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분인데도 그 뜻을 잘 모르시더군요. 저도 나중에 집에 와서 영어사전을 펼쳐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최근 국내에 등장하는 아파트의 이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익숙한 듯 생소한 이름들을 보며 '아파트 이름을 왜 저렇게 지었을까' 늘 의아했습니다. 고유명사니까 짓는 사람들 마음대로이기는 합니다.

.....온누리ㆍ미리내ㆍ늘푸른ㆍ샛별ㆍ진달래ㆍ무지개ㆍ 한숲ㆍ샘머리ㆍ맑은아침ㆍ푸른뫼ㆍ가람ㆍ한마루 이것들은 우리말을 잘 살려 쓴 아파트 이름입니다. 나르매ㆍ버드내ㆍ느리울 이것들은 우리말을 잘 살려 쓰려고 노력했으나 사전에 없는 단어입니다. 캐슬오페라ㆍ그린빌ㆍ자이ㆍ아이파크ㆍ타워팰리스ㆍ파라곤ㆍ아너스빌ㆍ캐슬ㆍ에버빌ㆍ래미안ㆍ미소지움ㆍ 푸르지오 이것들은 한글 정신에 가장 어긋나는 외국어 일색에 국적불명의 조어로 된 아파트 이름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서양식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시어머니가 집을 못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번역해서 그 뜻을 음미해보면 아주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아파트 이름들입니다. 문제는 이 이름들이 마치 상류 사회의 표상처럼 쓰이면서 아무런 여과 없이 남용되는 것은 깊이 고려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뜻은 아주 좋지만 우리말이 아닌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 가운데 하나가 '래미안'입니다. '래미안'은 한자어 '來美安'을 딴 이름인데,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들어온다'는 뜻을 지닌 것으로 아파트 이름으로서는 아주 걸맞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말 사전 어디에도 없는 단어이지요. '푸르지오'의 경우에는 '젊음ㆍ청춘ㆍ깨끗함ㆍ상쾌함'을 지닌 '푸르다'와 '지구ㆍ대지ㆍ공간'을 의미하는 'GEO'가 결합하여 '사람, 자연 그리고 환경이 하나 된 차원 높은 문화 공간'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푸르지요'의 잘못으로 '푸르지오'라고 표기한 줄 알았더니 우리말 '푸르다'와 외국어 'GEO'를 결합시켜 업체 입장에서는 아주 독창적으로 아파트 이름을 만들어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소지움 아파트? '미소지움'이란 순 우리말 미소짓다 의 '미소진'과 공간ㆍ집ㆍ대형경기장을 의미하는 영문형 어미 -UM 이 합쳐진 브랜드 명입니다. 이런 조어의 추세를 역겹게 보는 사람들은 우리말과 외국어가 절묘하게 결합하여 그것이 마치 명품 아파트를 대변하는 것인 양 치장되는 동안 우리말의 가치가 왜곡 변질되어 보이지 않게 우리 한글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박병춘 님이라는 분이 이러한 내용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렸는데요. 저는 이 분의 글을 읽고 나서 한 가지를 크게 깨달았습니다. 한국의 디자인회사들과 네이밍 회사들이 조어 네이밍 기법을 제품에 도입하는 것 까지는 좋으나 아파트나 주거단지 이름의 경우에는 이 조어의 기법을 심사숙고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우리는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고 우리말이라는 것이 대부분 과거 우리가 농경시대를 살 때 만들어진 말들이기 때문에 산업사회와 고도정보화사회, 지구촌 시대를 수용하고 구매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아파트 이름에 지닌 의미 찾기에만 집착하여 우리 한글을 외국어에다 막무가내로 끌어다 붙이는 등의 기법은 분명히 역겹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한국의 20세기 식 반사문화의 잔재입니다.

.....2004년 한글날을 맞아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네인즈가 2000년 이후 입주한 아파트 733개 단지 22만6087가구의 브랜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외국어 이름은 412개 단지 10만8009가구로 47.8%, 건설사 이름 을 쓴 아파트는 29.2%, 한자로 된 것은 13.2%, 외국어와 한글이 섞인 이름은 5.9%, 지역명을 빌려 쓴 이름은 1.3%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토박이말 이름을 가진 아파트는 2.3%인 25개 단지 6165가구에 그쳤습니다. 2006년 현재 토박이말 이름으로 밝혀진 아파트는 코오롱건설의 '하늘채', 금호건설의 '어울림', 한화의 '꿈에그린', 대한주택공사의 '뜨란채ㆍ참누리', 부영의 '사랑으로'가 있을 뿐입니다. 이 가운데 '하늘채'는 코오롱건설이 2000년 발표한 아파트 이름으로 '하늘'과 주거공간을 의미하는 '채'의 합성어이며, "내가 하늘이 되는 나의 무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금호건설의 '어울림'은 아파트 고유의 특성인 공동체의식을 강조한 것으로 "한 데 섞이다, 조화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한화건설의 '꿈에그린'은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 주거 공간을 뜻하며, 인간중심과 환경친화적 자연주의 미학 아파트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 이밖에 '뜨란채'는 '뜰ㆍ안채'를 붙여서 연철시킨 이름이고, '참누리'는 참다운 세상이란 뜻. '파란채'는 '파랗다'의 파란과 '집'을 뜻하는 채에서 따온 말이며, "파란채 아파트는 소비자들이 살수록 느끼는 기분 좋은 아파트, 파란 행복이 펼쳐지는 건강한 아파트"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토박이말로 이뤄진 이름으로 분류하기도 하는 '이안'은 "모든 가치가 이 안에 있다"는 뜻으로 토박이말이라고 합니다.

.....[2006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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