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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Pictograms for the 24th Olympic Games Seoul 1988

...............2021년 7월 25일자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가 쓴 "따분한 올림픽 개회식 그나마 픽토그램이 살렸다"라는 기사를 보고 문득 한마디 코멘트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23일 열린 도쿄올림픽 개회식은 놀랍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없어 무겁고 재미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히트 상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개회식 막바지에 등장한 픽토그램 쇼. 두 배우가 올림픽 50개 종목을 픽토그램으로 위트 있게 형상화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폭망할 뻔했는데 이건 진짜 인정한다" "꿀잼. 몇 번째 돌려보는지 모르겠다" "이거 말곤 기억이 안 나네. 최고~!" 같은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올림픽 스포츠 픽토그램이라고 하면 1972년 뮌헨올림픽 때 등장한 오틀 아이혀의 작품을 그 기원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실은 1964년 도쿄올림픽이 그 본격적인 기원입니다. 이전에도 유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픽토그램 그 자체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생겨난 공통 언어라고 해야 맞습니다. "말을 몰라도 괜찮아~!" 이제 전 세계에서 당연한 픽토그램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입니다. 현재의 화장실 마크는 바로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표준이 되었습니다. 일본 영빈관의 지하실에서 11명의 크리에이터들이 가쓰미 마사루의 지휘 아래 수개월간 시행 착오를 거치며 만들어낸 그림문자.

...............일본의 디자인계는 1964년 발표된 이 픽토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56년 만에 열린 TOKYO 2020 올림픽에도 바로 그 가쓰미 마사루의 픽토그램 디자인 감각을 그대로 승계하고 채용해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상반신을 투명하게 처리한 1988 서울올림픽의 픽토그램 디자인 감각이 가미된 것은 필자로서는 아주 흐뭇한 일입니다. 바로 필자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올림픽 픽토그램이 발표되자 갑자기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1972년 독일의 뮌헨 올림픽 때 독일사람 오틀 아이혀가 디자인한 스포츠픽토그램 판권을 1976년 올림픽 개최국인 자신들이 사서 보유하고 있는데 서울올림픽의 스포츠 픽토그램의 디자인의 각종 스포츠 동작들이 유사하니까 사용료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모스크바 올림픽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거치면서 같은 스포츠 동작이 반복 누적 사용되었지만 시비가 걸린 적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 얕잡아 보고 시비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 사용했던 스포츠픽토그램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까지 사용하려고 했던 계획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로서는 미국 캘로그사의 호돌이 마스코트 표절 디자인 시비에 이어 또 한 번의 매우 황당한 사건에 직면했으나 디자인을 다시 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픽토그램에 등장하는 모든 스포츠맨들의 동작을 1972년 독일사람 오틀 아이혀가 디자인한 스포츠 픽토그램과 전혀 다르게 다시 디자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왕 새로 디자인 하는 김에 더 유니크 하게 하고 더 경쾌한 감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상체를 외곽선만 부여해 투명하게 처리했던 것입니다.





Sports Pictograms for the 10th Asian Games Seoul 1986

...............1988년 서울올림픽 픽토그램의 디자인사적 의미는 바로 그 스포츠 동작 표현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72년부터 1984년까지 4번의 올림픽에 그대로 유지되었던 스포츠 동작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등장했던 것입니다. 디자인은 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이었던 제가 혼자서 주도했으며 드로잉 어시스턴트로 김승진 씨가 참여했습니다. 당시 배포한 조직위원회의 보도자료와 매뉴얼에는 여러 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만 디자인실 멤버들 이름으로 요식행위였습니다. 당시 서울대 조영제(1935-2019) 교수의 이름도 올라가 있었는데 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감수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95년 조영제 교수가 회갑기념으로 작품집을 출간하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 픽토그램을 마치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수록해 어안이 벙벙했습니만 16세 차이의 사제지간이라 항의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조영제 교수가 당시 조직위원회로부터 소정의 자문료를 받고 감수자로 참여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할만한 그 어떤 디자인적 행위로 기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든다면 창작회의 같은 어떠한 절차에의 참여 조차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포츠 동작 만 바꾸면 되는 단순한 리뉴얼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동작만 바꾸어서 기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 사용했던 스타일로 한벌, 상체를 투명하게 처리한 새로운 스타일로 한벌을 디자인했던 것입니다. 상체를 투명하게 디자인 한 것도 서울올림픽 때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1964년 도쿄올림픽 스포츠픽토그램 중에도 상체를 투명하게 처리한 것을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올림픽 스포츠픽토그램에서는 부분적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상체를 투명하게 처리했던 것 뿐입니다.

...............35년 전 일이기는 하지만 관심있는 분들에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몇 자 더 적어보겠습니다. 그러면 당시 조직위원회에서는 왜 조영제 교수에게 1988년 서울올림픽 픽토그램 리디자인 프로젝트의 감수를 의뢰했던 것일까요? 조영제 교수는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당시 국내 그래픽디자인계의 최고 권위자이기도 했고 또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이었기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리디자인에 대한 디자인계의 비판에 대비해 일종의 바람막이 같은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조영제 교수가 스포츠픽토그램에 탐을 낸 배경에는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7년간 모든 디자인 프로젝트에 관여함으로서 사실상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수행했는데 주요 창작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공식포스터에만 이름을 올려놓게 되어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스포츠 픽토그램 리뉴얼 작업에 감수역을 맡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이전에 치루어진 대회들의 픽토그램들과는 완전하게 차별화 되는 우수작이 탄생하게 되자 욕심을 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각종 해외 관련 매체 등에 꾸준히 반복누적해서 제가 유일무이한 원작자 임을 밝혀왔습니다. [2021년 7월]







Information Pictograms for the 10th Asian Games Seoul 1986 & Games of the 24th Olympiad Seoul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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